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글쓰기 실력은 노력으로 좋아질 수 있는 것인가? 오래 전부터 저자명에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꿔 왔다. 전공 분야 뿐 아니라 인생과 사회에 대해 나름 진지한 태도로 배우기를 즐기는 편인데, 언젠가 이 배움이 넘쳐 흐르길 바라며 오늘도 성실히 다양한 텍스트를 눈과 귀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런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입력에는 나름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출력하는데는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부의 수위가 차올라 세상으로 흘러나갈 때, 나의 글과 말이 나의 감정과 사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나의 공부로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거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글로 인해 소수의 사람일지라도 그의 사상과 마음에 울림은 만들고, 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글쓰기 초보에게 유시민씨의 <글쓰기 특강>은 혁명적인 교재였다. 좋은 글의 특징인 간결성/ 논리적 전개/ 사실과 해석의 분리 등을 통해 목표로 해야할 글의 특징을 배웠을 뿐더러,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 훈련방법인 독서와 쪽글쓰기에 대한 귀한 조언을 얻었다. <글쓰기 특강> 읽은지 이제 1년이 되어가고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글이 30편이 넘어간다. 그동안 읽고 썼던 글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성장을 가져다 줬다.

   우선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글 쓰는 일이 자연스럽지많은 않지만, 적어도 1~2주일에 내가 읽었던 책이나 들었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도 여러 번에 나눠 쓰던 것을 최근에는 한 호흡으로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의 구성도 어느정도 변화가 있었다. 책을 요약하고 글의 구성을 설명하는 식의 단순요약식 서평에서, 나의 생각이 어느정도 반영된 글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이렇게 글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시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느껴졌다. 블로그에 적은 글들을 다시 읽어보는데,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레벨이 올라가고는 있으나, 글의 수준이 포화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내가 정진하는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을 만한 목표 지점을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만났다. 그의 삶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선 생계 문제는 고민조차 하지 않던 젊은 시절부터, 힘있는 연설로 국민을 감동시키는 모습까지, 어느모로 보나 반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다. 그의 연설 영상을 보면 뭔가 묘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분명히 강한 어조로 이야기 하는데, 그 안에 국민에 대한 배려심이 느껴지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은 명확히 전달하고,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게 선언하지만, 그런 정책 뒤에 국민에 대한 애정이 어려있음을 강조한다. 그런 모순적 주제들을 조화롭게 삶과 정부 운영에 적용하는 그 사람 자체에도 놀랐지만, 그 글 자체에서도 일종의 경외감을 느낀다. ‘어쩜 저렇게 글을 잘쓰지?’ 라는, 도무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필력에 놀란 것이다.

   책의 저자 강원국씨는 <대통령의 글쓰기>를 통해 대통령의 먼치킨급 필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비결을 전달하고 이를 훈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본인의 겸손한 고백에 의하면) 글에 젬병인 평범한 회사원 강원국씨는 우연한 기회를 얻게되어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글을 다듬는 일을 하게 된다. 그 후엔 8년간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글쓰기의 거장들을 만나 그들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구 하나하나를 직접 다듬어줬고, 노무현 대통령은 불러서 앉혀놓고 토론하듯 가르쳤다. 연설문을 쓰는 일은 단지 글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연설하는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과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총칼로 집권한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마음을 얻어 집권한 대통령들 밑에서 말과 글을 배웠다”며 “두 대통령과 함께해서 행복한 8년이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이 책은 이런 배움의 결과물이다.

   이 문단을 읽는 순간 정말 부러웠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빛낸 두 대통령으로부터 글쓰기를 배웠다니. 물론, 그 꼼꼼한 거장 두 분을 상사로 모신 회사원의 비애를 생각하면 마냥 부럽다고 할만한 것은 아니겠지만. <대통령의 글쓰기>는 연설비서관실에서 고단한 삶을 보내는 강원국씨의 일상, 두 선생님이 던지시는 당근과 채찍, 두 대통령의 가르침을 일반화한 글쓰기의 원칙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인 나는 김대중, 노무현, 강원국, 이렇게 세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글쓰기’를 아주 싼 값에 배울 수 있었다.

   글에 관한 대통령들의 욕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 쓰느냐’‘무엇을 쓰느냐’의 차이다. 어떻게 쓰느냐,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있어 보이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대통령의 욕심은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의 고민이다. 그것이 곧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자신 없다고 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자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명문을 쓸까 하는 고민인 것이다. 이런 고민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담감만 키울 뿐이다.

   두 대통령이 연설문 비서관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지점이다. 글은 간결할 수록 좋다. 독자로 하여금 내용에 더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떄문이다. <칼의 노래>를 지은 소설가 김훈씨는 “주어와 동사만으로 이루어진 글을 쓰고 싶다”라는 고백을 할 정도로 글의 간결함은 훌륭한 덕목이다. 하지만, 글이 간결하다고 글쓰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내용을 어떻게 충실히 채울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내용들을 어떤 순서로, 어떤 기조로,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고 뒷받침할에 대한 고민. 그것이 글쓰는 사람이 가져야할 올바른 욕심이다. 이를 위해선 탄탄한 생각과 충분한 자료가 필수다.

   독서는 세 가지를 준다. 지식과 영감과 정서다. 책을 읽고 얻은 생각이다. 그 중에 글 쓰는데 영감이 가장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감옥에서의 독서는 유명하다. 옥중에서 보낸 편지 말미는 매번 ‘다음 책을 넣어주시오’로 끝났고, 10~20권의 도서 목록이 적혀 있었다. 정치-경제는 물론, 철학-신학-역사-문학-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러 권을 펴놓고 돌려가면서 하루 열 시간 정도 독서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마음껏 책을 봤으면 원이 없겠다. 이럴 때는 가끔 감옥에 있을 때가 그립기도 하다.”라는 농담아닌 농담을 할 정도였다. 1999년 5월 러시아 방문 때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이런 연설도 했다. “나는 오랜 옥중 생활을 통해서 러시아 문학을 섭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등 많은 러시아 고전을 탐독했습니다. 그리고 솔제니친과 사하로프의 작품들도 애독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을 읽은 것만으로도 감옥에 간 보람이 있었다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노 대통령 주위에는 늘 책이 있었다. 하루에 한 쪽이라도 읽었다. 책 읽는 게 일상 그 자체였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책은 장차관과 참모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했다. (…) 퇴임해서는 책에 더욱 빠져들었다. 찾아오는 사람들과 책을 놓고 토론하는 것을 즐겨했다. 윤태영 전 부속실장의 말이다. “봉하 사저의 대통령 자리 앞에는 언제나 책들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대통령은 끊이없이 책과 자료를 찾았다. 책 한권을 읽고 나면 그 속에서 다시 두 권의 책을 찾았고, 심지어는 외신에 등장하는 기고들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독서가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더욱 치열하게 하고 생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다.” (…) 재임 중에는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청와대 안에 ‘리더십 비서관’이라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리더십비서관의 역할은 현안에 대한 의견 개진도 있었으나 주로 국내외 책이나 칼럼, 논문을 읽고 그 요약본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 한 건씩 대통려에게 보고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코멘트를 하고, 궁금한 건 물어봤다. 그 시간이 대통령에게는 독서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두 대통령의 책에 대한 탐닉.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가지 깨친 점이 있다. 나는 독서가 가진 가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본인의 독서를 위해 새로운 직책을 만들 정도의 의지라면, 독서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감옥을 택하겠다는 향수라면, 그들에게 독서는 단순히 어휘력을 늘리고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수준의 훈련이 아니다. 독서는 김대중-노무현 이 두사람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정체성 그 자체다. 책을 읽음으로서 자기를 세우고 본인의 문제의식을 더욱 치열하게 갈고 닦는다. 강원국씨가 말하는 독서의 최대효과인 “영감”은, 글과 말로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원리로 동작하는 근본적인 것이다. 앞서 어떻게 쓸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쓸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독서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책에는 이런 삶을 아우른 거대한 원칙도 담겨있지만, 구체적인 글쓰기 비법도 찾아볼 수 있다. 아래 인용구가 그 예다. 긴 호흡의 글을 쓰려고 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목차 구성법은 앞으로 글쓰기를 할 때 따라하면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쓰던 가장 일반적인 얼개 짜기는 이런 것이다. 먼저, 하고 싶은 얘기를 서너 개 정한다. 이것이 큰 제목이 된다. 이러한 큰 제목 안에 들어갈 내용을 중간 제목으로 열거한다. 또 중간 제목 안에 들어갈 내용을 그 아래 적는다. 소제목들이다. 이렇게 하여 큰 제목, 중간 제목, 소제목이 나오면 얼개가 짜진다. 이 과정은 책으로 얘기하면 목차 만들기와 같다. 전체 글을 압축해 놓은 뼈대인 것이다.

   <대통령의 글쓰기>에는 글쓰기의 원리와 그 훈련 방법 말고도, 대통령의 재미난 일상도 담겨있다. 두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어 책 읽는 것 자체가 행운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2003년 4월 국회 국정연설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취임 후 첫 번째로 맞는 큰 연설이어서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요일인 그날도 관저에서 일곱 시간 가까운 회의가 이어졌다. 대통령은 갑자기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축구를 한 만큼 관저 마당이 넓지는 않지만, 우리는 30분 정도 대통령과 공을 주고 받았다. 대통령은 잠시 쓰는 것을 멈추고 생각의 숙성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자네들보다 머리가 좋을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닐세. 나는 자네들보다 열배는 더 생각을 많이 할 걸세. 어느 때는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하네. 잠자리에서 생각난 것을 잊어버릴까봐 그러네.” 실제로 그랬따. 노 대통령은 회의자리에서도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서 회의 중에 잠시 대화가 끊기는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쏟아지는 대통령의 말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원인 진단에서부터 대안 제시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사안을 전후좌우로 헤집으며 의견을 내놓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폭탄’을 녹음하기전에 부속실에 물어봤다.(폭탄=연설문비서실이 작성한 연설문을 대통령이 완전히 폐기하고 스스로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 “이 연설 몇 분 짜리지요?” 녹음테이프에서 들려오는 첫마디 육성은 연설 제목이다. “이것은 국군의 날 연설문입니다.” 놀랍게도 녹음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는다. 연설 시간에 꼭 맞는 분량으로 끝이 난다. 우리는 대통령의 육성을 실연문 형태로 다시 옮겨 작성한다. 그러면 대통령은 그것을 들고 가서 연설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개방적이었다. 심지어 인수위원회 직전까지만 해도 당선자와 같이 담배 피우는 거이 허용될 정도였다. 임기 초,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람과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대통령이 담배를 한 대 물었따. 그러면서 동석한 연하의 그 사람에게 그런다.

“이제는 같이 담배 피우는 것 안 됩니다. 내가 대통령이니까”

우스갯소리를 한 후, 그래도 미안한지 한 마디 덧붙인다.

“너무 야박하지? 한 대만 피우게.”

그 이후에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몇몇 사람들에게 담배 피우는 게 허용됐다.

   너무 재밌게 읽었던 책이라 그런지 인용을 많이 해버렸다. 마지막에 인용하는 두 문단은 글을 시작할 때 가졌던 목마름에 대한 두 대통령의 답이다. 용기를 내어 자기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라는 조언. 가슴 속 깊이 새겨두고 싶은 문단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미덕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글을 쓰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첫 줄을 쓰는 용기,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 쓴 글을 남에게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술 마시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랑을 고백하고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일도 용기가 없으면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용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양심과 소신을 지키는 용기를 말하려고 한다.

   두 대통령은 리더에 관해서 또 다른 비슷한 얘기를 한다. 

리더는 글을 자기가 써야 한다. 자기의 생각을 써야 한다. 글은 역사에 남는다. 다른 사람이 쓴 연설문을 낭독하고, 미사여구를 모아 만든 연설문을 자기 것인 양 역사에 남기는 것은 잘못이다. 부족하더라도 자기가 써야 한다.” 

연설문을 직접 쓰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습니.“ 

전자는 김대중 대통령, 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실제로 노대통령은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설문 작성 온라인 교육을 시행하라고 연설비서관실에 지시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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