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지음.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지음.
유시민 전장관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내놓은 책이다. 학생에서 회사원으로 신분이 바뀌고 방향 설정으로 고민하던 시기에 이 책을 처음 접했다. 2011년에 입사하고 정신없이 적응하고 나니 2년이 지나 있었다. 그 회사에 적응하는 기간은 일종의 투쟁이었다. 갑작스레 강한 적이 나타나고, 이와 싸워내는 과정으로 입사 초기를 요약할 수 있다. 그 적은 사람일때도 있었고, 연구주제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해가면서 살다보니 이런 질문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면, 먼 훗날 뒤를 돌아보며 미소지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어느새 사회에 진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의 주된 이야기 거리였다. ‘우리 어떻게 살까?’. 마땅히 물어볼 이 하나 없는 막막하던 때, 이 책이 출간됐다. 많이 놀랐다. 그의 후반기 정치 인생은 상실의 연속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 김근태씨는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정치적 동료들은 호남 기반 세력들과의 기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치적 동료들은 하나 둘씩 그 곁을 떠나갔고, 매 선거에서 낙방했다. 쇄신을 꽤하려 진보정당에 자리를 잡아보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그 사이 새누리당의 권력은 뒤집을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사면초가. 그는 정치은퇴를 선언한다. 멋있는 선언이기는 했지만, 그 끝이 쓸쓸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지식 소매상’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소개하며 책을 출간한다. 자기가 목표하는 ‘지식 소매상’을 홍보하는 글이기도 하고, 지난 날을 돌이켜보는 회고록이기도 하다. 지난 날의 영광을 찬양하고, 자기의 실패를 변명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억울했던 일들을 호소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거물급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 지난 날과 앞으로의 날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나는 인생을 이렇게 살았고, 그 당시 어떤 생각으로 그런 판단을 했다. 그 일은 지금 돌이켜보면 잘한 일이었다, 혹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내게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이렇게 살고 싶다. 그리고, 남은 인생은 이렇게 살고 싶다. 마치 카페에서 차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눌 때나 주고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글로 담아냈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자상함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야망병에 걸리기 쉬운 청춘들에게 좋은 삶을 찾기 위해 던져야할 질문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저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인지, 독자들에게 주는 선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문장들이 가득한 책이다. 그 좋은 글들과 자상함을 잊지 못해 여러 번 들춰보게 되는 책이다. 아끼는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좋은 글들이 너무 많아 선별하기 어렵지만, 기억을 위해 줄 그어둔 문장 중 몇 개를 골라보았다. Ridibooks 앱으로 읽은 글이라 page는 적지 못했다.
“나는 열정이 있는 삶을 원한다.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자유롭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의 마지막 여정까지, 그렇게 철이 덜 난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 내 삶에 단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사는게 나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자유로움과 열정, 설렘과 기쁨이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잊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이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황홀하게 느끼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인가? 내 삶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는가?’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삶의 존엄도 없는 것이다.”
"’먹물’은 읽을거리를 먹고 산다”
“놀 때는 떳떳하게 노는 게 좋다. 하지만 약간의 도덕적 부담감을 느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부담감은 노는 시간과 방법을 스스로 제한하는데 도움이 된다. 떳떳하게 놀고 싶어서 가족과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더 적극적으로 감당하도록 자극한다.”
“만약 영원히 헤어진다고 해도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그대는 잘못 산 것이다.”
“나는 몸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영혼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내가 죽은 후에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진 나에 대한 느낌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모여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느낌을 나누고 삶에 감사하며 서로 정을 주고받는 좋은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내 자식들은 촛불을 켜고 음식을 차린 제사상 앞이 아니라 새가 노래하고 바람이 숨 쉬는 자연의 품에서 그런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가까이 온 만큼 남은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면서 잘 준비해야 그런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우스며 지구 행성을 떠나고 싶다.”
- 《어떻게 살것인가》, 아포리아, 2013. ISBN 9788965132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