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신곡

단테-신곡

학업을 마치고 일을 시작한지 1년 반 정도 시간이 지났다. 타지에서 살아남는 것도, 생경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자리 잡아가는 일도 쉽지가 않다.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깐깐한 선배들을 설득해나가는 과정, 제안한 방법을 뒷받침할 실험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주는 피로감은 이제 하루 이틀의 휴식으로는 해소되지 않을만큼 쌓여버린 것 같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느낄 때에, 감사하게도 한 달정도의 휴식 기간을 얻게 되었고, 일의 노예로 지내는 동안 멀리했던 독서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귀중한 시간을 어떤 책으로 시작할까하고 생각해보았는데, ‘지옥’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리 속을 맴돌았다. 지옥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고통받고 있을 등장인물과 공감을 나누고 싶기 때문인지, 찐 고통을 간접 체험하고 담력을 기르기 위함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옥 구경 한번 하고 오면 왠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단테의 신곡을 펼쳐보았다.

저자이자 신곡 속 화자인 단테는 한 때 사랑했지만 지금은 천국에 자리잡은 여인 베아트리체의 초대를 받아,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구경하게 된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단테가 묘사한 지옥세계를 지옥도에 그려냈다.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예수를 믿지 않아 무성영화같은 삶을 살아가는 림보를 시작으로, 마왕 루시퍼가 지배하는 9층 지옥까지가 묘사되어있다. (지옥의 구조는 이곳에 잘 정리되어있으므로 참고 하시면 좋을 듯.) 단테가 구경한 여러 지옥들 가운데 유독 눈길이 가는 지옥이 있었는데, 바로 4층에 있는 인색과 낭비 지옥이었다. 재물에 집착하여 죄를 지은 죄인들이 가는 곳으로, 낭비가 심했던 자들과 인색했던 자들이 서로의 방향으로 짐을 굴리며 서로 방해하고 비난하는 지옥이었다. 두 상반된 성향의 죄인들이 만들어낸 무한한 일감 덕분에 이 노동 형벌은 영원히 지속된다. 

 

신곡을 읽는 기간동안, ‘신과 함께’를 다시 찾아 보게 되었는데, 이 곳에 등장한 나태지옥이 일견 비슷한 성격을 지닌듯 보인다. 나태한 자들은 자동으로 회전하는 봉에 맞지 않기 위해 끝없이 달려야만 한다. 혹여나 잠시라도 쉬다가 저 봉에 맞게 되면, 식인 물고기가 도사리는 물속으로 들어가 살점이 뜯기는 고통을 겪어야 하니, 다시 뭍으로 올라와 쉬지 않고 달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일감으로 고생하다가 읽은 신곡 속의 지옥도 끝없이 일해야하는 형벌로 가득차 있으니, 왠지 모르게 지옥 속 설정이 그리 허구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궤로 글을 읽다보니, 신곡 속 지옥, 연옥, 천국은 사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극악부터 극락까지의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일상은 림보와 지옥9층사이 어딘가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고통과 희망이 공존하는 연옥, 혹은 삶의 궁극적인 지향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천국을 맛보기도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신곡은 좋은 질문 하나를 얻어갈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지금 내 삶은 지옥, 연옥, 천국 그리고 그 속 몇 층 쯤에 놓여있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