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Jonas Jonasson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Jonas Jonasson

말름쉐핑 마을의 양로원이 경사를 맞았다. 알란 칼손이라고 하는 할아버지가 100세를 생일을 맞은 것이다.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양로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물론 시장님도 한자리에 모였다. 마을 사람들이 백번째 생일을 축하할 생각으로 기분이 들떠 있을 때, 정작 주인공인 칼손씨는 한가지 작은 결심을 한다. 사람들의 축하세례를 피해 얼른 도망가야겠다는 결심을.

“꼭 여기서 죽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다른 때, 다른 곳에서 죽는다고 하여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

칼손씨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따져보지도 않고, 돈이나 옷가지등 여행을 위한 준비물에 대한 어떤 고민도 해보지 않은채로 양로원을 떠난다.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벌써 말름셰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그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날 알란은 백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릎 통증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킨 알란은 유유자적 말름쉐핑 마을를 어슬렁 거리며 돌아 다니기 시작한다. 소지품은 양로원에서 입고 있던 옷과, 슬리퍼 두짝이 전부다. 세상에, 지갑 하나 안 챙기고 가출을 하다니.

책은 이렇게 가출한 할아버지의 모험을 신명나게 그려낸다. 마약 거래대금이 담긴 가방을 우연히 손에 넣고, 그 진짜 주인인 깡패들을 하나 하나 의도치 않게 ‘처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같이 모험을 할 친구들을 만나 우정을 쌓기도 한다.

한편, 칼손씨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삶은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흥미로운 것들만 추리자면, 아버지가 레닌의 공산당에 막무가내로 대들다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이야기, 폭탄 공장을 세워서 옆 마을 소를 유산시킨 이야기, 유연히 폭탄 기술로 독일을 돕다가 스페인의 혁명가의 친구가 된 이야기, 마땅한 계획없이 떠난 미국여행에서 우연히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핵폭탄을 개발한 이야기, 냉전의 주인공들인 스탈린, 트루먼, 등소평, 김일성, 김정일한테 대들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 이야기 등등. 책에서 들려주는 칼손씨의 역사는 <포레스트 검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황당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떠오르는대로 행동하는 그에게도 나름의 철학이 있다. 

“알란의 인생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어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그 메시지가 소년의 영혼에 뿌리를 내리기가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렇게 정착한 뒤에는 영원히 남았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살다보면 계획이나 희망과 너무도 다른 일들이 벌어질 때가 많다. 사실 계획이란걸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우연하게 일어난 일들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 터지면 개죽음을 당할 수 도 있다. 금융 위기가 찾아오면 충분한 실력을 갖춘 청년들도 취직 문턱을 넘어서기 힘들다. 반대로, 아무 생각없이 주문한 주식이 대박을 치기도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긁어본 복권에 당첨되기도 한다. 칼손씨의 어머니가 던진 메시지는 그런 세상에 대한 진단이다. 개인의 운명은 사실 재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결정된다는, 사회 생활 하다보면 자주 듣게 되는 ‘운칠기삼’같은 체념이다. 이런 운명론적 접근은 삶의 동기를 꺾어 무기력한 생활을 하게 만들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칼손씨는 이 문장을 좀 다른 식으로 받아 들인다. 어차피 자기 삶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게 될테니, ‘내 인생의 흥망은 알 바가 아니다’는 마인드로 살아간다. 먼 미래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 순간에 돕고 싶은 사람은 돕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상대가 스탈린같은 독재자든 오펜하이머 같이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이든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만다. 매 시간의 일감과 공부거리를 정의하고, 학위 과정이 마치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정교하게 고민하면서 설계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보면, 이 할아버지는 말도 안되는 인간이다. 이런 친구가 있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설득하고 싶은 아찔한 유형이다.

작가인 요나슨씨도 이 할이버지의 일대기와 말년의 모험을 보여주면서, ‘여러분도 이렇게 사세요’라는 교훈을 던지려던 것은 아닐 것 같다. 다만,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경각심을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자신이 설계한 인생과 달리 승부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위로하려던 것은 아닐까. ‘이 대책없는 할아버지도 이렇게 행복한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사실 작가인 요나슨씨는 백명이 넘는 직원을 가진 회사를 직접 일군 자수성가형 사업가였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 모든 열정과 시간을 쏟아부은 사업이 자기의 행복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으며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009년에 이 책을 발표한다. 스웨덴에서 처음 출간되어 1백만부 이상, 독일에서 4백만부, 프랑스에서 80만부 등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1] 2014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뜨거운 인기의 원인은 어쩌면 구 발표시기인 “2009년”에 있지 않나 싶다. 금융위기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기인 만큼, 사람들은 위로거리를 찾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청년을 위로하는 온갖 책들과 강연이 한참 유행했던 때기도 하다. 힐링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한국의 유행과는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힐링 서적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자기의 권위를 내세워 ‘미생’인 청년들에게 ‘정답’을 던지는 형태였다. 반면, 이 소설은 엉뚱한 할아버지의 삶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독자로 하여금 원하는 만큼 공명할 수 있는 여백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런 여백은 아마도, 아직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는 작가의 겸손함 덕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유쾌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발췌하며 글을 마치겠다. 할아버지의 10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물먹이는 장면이다. “오직 파티의 주인공만 불참하게 될 거였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사이다 같이 속 시원하다.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리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벌써 말름셰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그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날 알란은 백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백 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시장도 초대되었고, 한 지역 신문도 달려와 이 행사를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노인들은 모두 최대한 멋지게 차려입고 기다리는 중이었고, 성질머리 고약한 알리스 원장을 위시한 양로원 직원 일동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파티의 주인공만 불참하게 될 거였다.

[1]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한글위키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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