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의 검성(劍聖), 미야모토 무사시 - 요시카와 에이지

불패의 검성(劍聖), 미야모토 무사시 - 요시카와 에이지

   이번 주는 20세기 초 일본 문학의 거성,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불패의 검성(劍聖), 미야모토 무사시>를 읽었다. 얼마 전 <칼의 노래>를 읽고 생긴 일본 역사에 대한 호기심 덕분이었다. 임진왜란의 시작과 끝은, 사실 일본의 역사라도 해도 무방할 만큼 일본의 전국시대와 관련이 깊다. 때는 16세기 중반, 일본 열도 각지를 차지하고 있는 다이묘들은 일본을 재패하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벌인다. 그 전쟁은 오다노부나가에 의해 마무리 되고, 그의 사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패권을 손에 쥐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점에 올라선 후 국내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다분히 국내 정치를 목적으로 한 전쟁이었기에 히데요시가 죽고나자 임진왜란은 그 동력을 잃고 곧바로 마무리 된다. 히데요시의 후계자인 히데요리는 그 권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서서히 반(反)히데요시 파벌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세키가하라 전투를 계기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열도의 1인자 자리인 쇼군(정이대장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때부터 메이지 유신 전까지, 250여년동안 도쿠가와 가문이 일본을 지배하게 된다. 

   소설은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한 두 십대 청춘을 조명하며 시작한다. ‘신멘 다케조’와 ‘혼이덴 마타하치’. 두 사람은 17살의 나이로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서군(히데요시파)이었던 우케타 히데이에 측에서 보병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여하지만, 동군(도쿠가와 측)에 처참히 무너지며 겨우 목숨만 부지한다. 패잔병 신분인지라 잠시 숨어지내던 여인 ‘오코’의 초가집에서 두 사람의 인생은 정반대로 갈리게 된다. 다케조는 오코의 유혹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마타하치는 그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오코 곁에 남게 된 것이다. 고향인 미야모토 마을에는 어린 약혼녀 ‘오츠’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돌아온 소식은 마타하치의 배신 뿐이었다. 한편, 마타하치의 어머니인 ‘오스기’ 할멈은 마타하치가 잘못된 길에 돌아선 것을 오로지 다케조 탓으로 돌리며 그를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평생을 복수에 전념한다. 패잔병 신분에 더해 천하의 악당으로 몰린 다케조는 스님 다쿠안 손에 체포되어 3년간 독방에서 수행한다. 그리고,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이름을 ‘미야모토 무사시’로 개명, 검을 통한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인물들을 꼽아보면… 한심한 놈 ‘혼이덴 마타하치’, 마타하치의 약혼녀였으나 그에게 배신당한후 무사시를 사랑하게 된 ‘오츠’, 그리고 당연히 주인공인 ‘미야모토 무사시’,이렇게 세 사람이다. 

   마타하치는 히어로 영화에 단골로 나오는 말썽꾸러기 역할을 도맡아 한다. 하는 말마다 손바닥 뒤집듯 하고, 본인을 검의 달인 ‘간류 사사키 고지로’라고 사기치고 다니다가 직접 고지로를 만나 한바탕 혼나기도 한다. 오츠나 무사시를 사랑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애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이런 자가 무사시의 친구라니… 무사시도 참 고생이 많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철부지이다. 중간 중간 출연하면서 독자를 즐겁게 하는 폭소 유발자다.

   오츠는 사랑과 신념의 대명사다. 결혼하기 전에 배신한 약혼자 마타하치의 어머니 ‘오스기’를 지극 정성으로 모신 의리의 여자다.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나이 무사시가 말 한마디 없이 도망가고 만날때 마다 철벽을 쳐도, 목숨을 걸고 쫓아가서 10년 간의 구애 끝에 결국 ‘아내’라는 고백을 받아낸 인내심과 집념의 1인자다. 내 생각엔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내공이 깊은 고수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나는 삼 년 동안 어둠 속에서 책을 읽고 몸부림치며 겨우 인간이 가야 할 길을 깨달았소. 그리고 이제 막 다시 태어나 밖으로 나왔소. 이제부터 신멘 다케조 아니 이름도 미야모토 무사시로 바꾼 내게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그래서 더욱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소. 그런 사람과 함께 기나긴 고행길을 나선다면 당신도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오.” (1권)

“하지만 꼭 한 마디만 말씀해 주세요. 아, 아내라는 한 마디만.”

(…) “무사의 아내는 출전에 있어 눈물을 보이지 않는법, 웃으며 보내주시오. 마지막일지 모를 낭군의 출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오.” (10권)

   무사시는 검을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친 사나이다. 그에게 깨달음을 안겨준 스님 다쿠안의 내공을 깊이 사모하며, 검술을 갈고 닦아 선(禪)의 경지에 이르고자 노력했다. 제일검을 향한 그의 진지한 자세와 끝없는 수행으로 무사시는 검술의 달인이 된다.  일본의 수도에 해당하는 교토의 명문 무사 가문, ‘요시오카’가문을 이끄는 두 형제를 제압하고, 70여명의 제자들과 싸워 이긴다. 여기에 수많은 재야 고수들을 무찌른 것은 물론, 당대 최고의 검사로 꼽히는 사사키 고지로와의 대결에서도 상처 없이 승리를 거두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다. 책을 읽고나서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무사시가 직접 저술한 <오륜서>에 의하면 이런 진검/목검 승부에서 60여번이나 이겼다고 한다. 한번이라도 지면 죽거나 폐인이 되는 승부를 60번이 넘게 했다니…. 이게 진짜면 역사상 가장 강한 사나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한다. 안타깝게도 <오륜서> 이외에 그의 실력을 검증할 만한 사료가 부족하다고 하니 이 소설엔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아래는 무사시와 관련해 줄쳤던 부분이다. 그의 검을 향한 진정성과, 외로운 길에 대한 그의 감상이 인상적이었다. 

   고검! 이제 그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한 자루의 검이었다. 무사시는 손으로 검을 만져보았다. ‘검에 인생을 걸자! 이것을 혼으로 여기고 늘 수련해서 인간으로서 나를 어디까지 고양시킬수 있는지 도전해보자! 다쿠안은 선으로 수행하고 있다. 나는 검을 길로 삼아 그를 능가할 것이다.’ 무사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무살의 청춘 아직 늦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에는 힘이 있었다. 젊음과 희망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가끔 삿갓을 올려 끝을 알 수 없는, 또 앞에 펼쳐질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의 긴 여정을 바라 보았다. (1권)      무사시는 다쿠안에 대한 은의로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그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무사시의 공상이었다. 자신은 이제 겨우 검의 길에 한 발 정도 들여놓은 것에 불과했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 얼마나 끝없고 지난한 일인가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다쿠안의 경지를 생각하면 암담해졌다. 그리고 끝내 만나지는 못했지만 야규 계곡의 검종 세키슈사이의 높은 경지를 상상하면, 분하고 서글프지만 자기 따위는 아직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감하였다. 병법이나 도라는 말을 입에 담기도 부끄러웠고 또한 보잘 것 없는 인간들만 보이던 이 세상이 갑자기 한없이 넓고 무서워졌다.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 검은 이론이 아니다. 인생도 이론이 아니다. 행동하는 것이요, 실천하는 것이다’ (3권)

   ’본래 나는 미숙한 인간이었다. 걸핏하면 사람을 그리워하는 갓난아기처럼 젖비린내 나는 감상에 마음이 흔들리고 혼자 있으면 외로워하고 불이 켜져 있는 따스한 집을 부러워 했다. 얼마나 못난 마음이냐. 왜 자신에게 주어진 이 고독과 유랑에 감사하지 못하고 이상과 용기도 갖지 못한단 말인가?’ 아플만큼 얼어붙었던 무사시의 발은 어느새 발끝까지 뜨거워져 있었고, 어둠 속에서 내쉬는 하얀 숨결도 뜨거운 수증기와 같은 박력으로 추위를 이겨 냈다. ‘이상이 없는 유랑자, 고마운 줄 모르는 고독, 그것은 걸식을 하고 돌아다니는 생애에 불과하다. 사이교 법사와 걸식과의 차이는 그것이 마음에 있는가 없는가 하는 차이에 다름 아니다.’ 언뜻 발 아래로 하얀 빛이 스쳐갔다. 내려다보니 살 얼음을 딛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그는 강가에 내려와 가모 강의 동쪽 기슭을 걷고 있었다. 강물과 하늘은 아직 어두웠고 날이 샐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무사시는 품에서 떡을 꺼내 불에 구웠다. 점점 부풀어 오른 떡을 보고 있자니 다시 소녀 무렵의 설날이 떠올라 집 없는 아이의 감상이 물거품처럼 마음속에서 명멸했다. “…….” 짠맛이나 단맛도 없는 그저 평범한 떡이었다. 그러나 그 떡 속에서 세상살이에 대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설날이다.” (3권)

   나름, 도전을 해보겠다고 타지에 나와있는 처지이다보니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강한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정진하는 인물들, 무사시와 오츠를 보면서 마음가짐에 대한 공부가 되었던 좋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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