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벅지 - 다나베 세이코

여자는 허벅지 - 다나베 세이코

<여자는 허벅지>

   리디북스의 판매대(?)를 돌아다니다가,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여자는 허벅지라고? 제목만 봐서는 차별적인 발언처럼 보이기도 해서 호기심이 동했다.

   저자인 다나베 세이코는 192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대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비롯해 다수 작품을 저술한 인기 소설 작가다. 그녀가 1970년대에 잡지에 투고한 원고들을 중 일부를 발췌해 엮은 것이 이 책, <여자는 허벅지>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여자라는 동물’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여자를 설명하다보면, 자연스레 남자와 비교대조를 하게 되므로, ‘남자라는 동물’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일관된 목적을 갖고 쓰인 글이 아니라, 부담 없이 하나 하나의 에세이를 즐기면서 보기 좋다.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가모카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남녀가 가진 시선의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가모카 아저씨는, 작가 세이코씨의 남편을 지칭하는듯.)

 

   책을 읽으면서, 응? 정말 여자는 그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여자들에 대해 몰랐던 부분들을 접할 수 있었다. 글쓴이의 친구이자  가모카 아저씨는 어쩌면, 여성에 대해 무지한 모든 남성을 대표하는 인물일수도… 

  언젠가 어떤 잡지 투고란에서 이런 구적을 본적이 있다. ”아이를 몇이나 낳고 밤바다를 헤엄치누나” 정말 굉장한 인생 아닌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여자의 성적 궁극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느냐 낳지 않느냐로 여자는 어떤 선을 뛰어넘게 된다고 생각한다. 무서울 것 없는 경지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정성들여 ‘조몰라거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 부인들의 표정을 보면 그야말로 무념무상, 마치 미야모토 무사시가 간료지마로 향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여자는 왜 신부 의상을 입고 싶어하는 걸까? 그건 여자가 연극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한 번 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서너살 때부터 머리에 무언가를 얹고 엄마의 기모노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신부놀이나 공주님 놀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자란 이 세상에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극하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 하지만 신랑은 남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남자는 실질적이고도 현실적이다. 그는 연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남자는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오늘 밤 그녀와 자기 위한 선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 남자는 결혼식을 그녀와 자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기 때문에, 왜 이런 원숭이 연극같은 것을 해야하는지 불만을 품고 있다. 

남자들의 일대 의문이 있다. 

“여자에게는 성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내 친구 가모카 아저씨가 물었다. 

“여자에겐 욕구가 없지 않나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 여자들에게 당뇨병이 있지 않냐고 묻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당연히 여자에게도 있다. 

하지만 여자의 성욕은 평생에 걸쳐 만물과 닿아 있는 것으로, 남자처럼 좁고 깊게 응고돼 있는 것이 아니다. (…) 

‘도저히 못참겠다’ 싶은 마음이 여자에게는 없다. 여자가 남자를 강간했다는 이야기가 없는 건 꼭 체력과 신체적 구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여자들이 이해하는 남자’라는 시선도 재미있다. 50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공감가는 내용이 많다.

남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안게 만들어라, 술을 먹여라, 음식을 많이 먹여라, 돈을 쥐어 줘라, 허세를 받아 줘라, 이렇게 다섯 가지인데, 그는 이를 ‘5계명 작전’이라고 불렀다. (…) 다섯 가지 모두를 써서 총공격을 가하면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없다고 한다. (…) 그래서 남자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아는 체하며 보여 주면, 여자는 부러 까무러치면서 “어머”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이다. 

“요즘엔 이런 식으로들 한다는 것 아니냐. 놀랐지? 아직 놀라긴 이르다고” 

“어머, 당신은 어쩜 모르는게 없네요”

“남자아이가 그런 것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나중에 큰일 못해요”

엄마 본인은 이런 불평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큰일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대학에 들어가 일류 회사에 근무하는 것? 가만 보면 남자들이 한다는 그 큰일이라는 건 고작 돈벌이 아니면 전쟁에 우르르 끌려가는 것이다. 대항해시대는 이미 끝났다. 큰일을 여자가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남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가정 수업에 대한 구별이 생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적인 대화도 거침없이 하는 센 언니의 풍모도 여러차례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 부인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남편이 (정관)수술을 하고 나서 바람피우면 어쩌나 걱정하신다면, 그건 기우라고. 마음 놓고 다가갈 여자도 있겠지만, 여자란 여자가 모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한물간 그 미녀 기자처럼 “공포탄은 매력없어”라고 말하는 심술쟁이 여자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정말 읽기 어려웠다. 여태 접했던 철학,경제, 과학, 역사 등등의 어떤 분야보다도 읽기가 어려웠는데, 그만큼 여성에 아는 바가 적기 때문이다. ’성’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도 몰랐고, ‘여성’에 대해 모르던 것이 이리 많은지도 몰랐다. 서평을 쓰는 것도 힘든 것이, 줄친 문단들이 처음 접해보는 것들이기도 하고 워낙 작가의 글이 거침없기도 해서, 생각이 정지한 느낌이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센 언니들 앞에서 항상 벙어리였다;;; (그래서 이번 서평은 거의 발췌 수준이다..) 

“처음 여자를 알게 됐을 때 가장 깜짝 놀랐던게 뭐예요? 가르쳐 주세요”(…)

기타노 씨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다시 심각하게 고심한 뒤 대답했다.

“허벅지였습니다”

“허벅지?”

“아, 여자의 허벅지가 이렇게 굵은 것이로구나. 처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굵고 하얬어요.”

   사람은 잘 모르는 대상을 만나면, 상상이나 허구를 통해 그 미지의 영역을 메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그리고 그 반대 경우의) 무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지는 위험하다. ’허벅지’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허구적 상상력으로, ‘여자는 이럴거야’, 혹은 ‘여자는 이래야해’ 하고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센 언니의 유쾌한 가르침이 즐겁기도 했지만, 이성에 대한 무지를 반성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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