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신앙 - 이효재

일터신앙 - 이효재

소명, 사랑, 기도, 그리고 인내: 일터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소명 그리고 사역을 이야기하다.


소명에 대한 갈증

(로마서 12장)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더 구체적으로, 크리스천답게 일하기 위해선 (내 경우엔 공부하고, 연구하고, 설계하는 일) 어떻게 일해야 할까.

더 나은 성과를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하루 하루가, 예수의 제자된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좀 더 근본적으로는,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하루의 일과를 정할 때, 한 해의 목표를 정할 때, 일생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와 지키고 싶은 바를 꿈꿀 때, 내가 추구할 방향은 무엇이고 그 방향의 근거는 무엇인가.

요즘들어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소명(Calling)이란 키워드에 담겨 있음은 알고 있지만, 내게 주어진 소명이 어떤 것인지, 그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답을 찾지 못한체 제자리 걸음 중이다. 그러던 중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께 이런 고민을 터놓고 말씀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일터 신학을 전공하신 이효재 목사님의 책 <일터 신앙>을 흔쾌히 빌려주셨다. 저자는 목회의 길을 걷기 전, 대형 신문사에서 기자로 수 년간 일하며 직장에서의 소명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진지한 고민들은 목회 방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리젠트 칼리지의 폴 스티븐스 교수로부터 일터 신학을 공부하게 했다. 현재 그는 목회와 신우회를 통해 직장과 일상에서 소명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이런 배경을 책의 서문에서 읽고 나니, 책을 읽는 과정이 더 공감되고 즐거웠던 것 같다.

이 책은 다음 질문에 대해 일터 신학이 답하는 바를 소개한다. 소명이란 무엇인가, 소명을 알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일반 소명은 무엇인가, 가정과 일터에서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어떤 자세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삶이 영적 예배되는 삶이 되기 위해서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그간 고민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읽어 내려가며, 적어도 어떤 훈련과 어떤 노력을 통해 소명을 알아가고 이뤄갈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소망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마 한국에 방문할 일이 있으면 여러 권 사서,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선물할 것 같다.

아래에는 책을 읽으며 감명깊게 읽은 부분들을 발췌하고, 각 챕터의 내용을 한 두 줄로 요약해 두었다. 이 포스팅은 앞으로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날이면 다시 찾아 읽을 것 같아, 조금 공을 들여 정리해 보았다.


제 1장. 들으라 (하나님의 부르심 듣기)

요약: 기쁨으로 일하기? → 일이 재미 있어야 함. → 일의 의미를 발견해야 함. → 우리 일이 소명임을 알아야 함. → “하나님의 형상”답게 제사장의 마음으로 일해야 함. →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응시하고 귀 기울여, 그 말씀을 듣고 순종 해야 한다.

기쁨으로 일하려면 먼저 일이 재미있어야 한다. 일하는 내가 그 일에서 소외되지 않고 일과 일치되어야 한다. …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까? 자기가 하는 일에서 만족할만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일이 재미있어진다.

그리스도인은 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일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에서 신앙의 가치를 실현하도록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회심해야 한다. 회심은 영혼 뿐 만 아니라 일상적인 일터 현장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일터에서 회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사무실이나 공장이나 학교나 매장에서 하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앙에 비추어 지금 자신이 신앙에 합당하게 일하고 있는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신학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과 일의 관계를 ‘소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명에 따라 일할 때 일과 자신이 일치하며 재미있게 일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일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고 거칠어도 일하는 사람 안에 기쁨이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회심하는 첫 단계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소명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명= calling, 사명=mission

현대 신학자들도 이러한 고고학적 연구(‘신의 형상을 닮은 자’를 ‘왕’으로 보는 해석)를 수용해 ‘하나님의 형상’(창세기 1장 26-27절) 의 의미를 관계적인 측면에서 해석한다. 위르겐 몰트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땅의 다른 피조물들을 지배하는 존재로 해석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피조 세계를 위해 일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다스리고 경작하고 지키는 우리의 일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들은 일터에서 만들어내는 제품과 서비스 뿐 아니라 일하는 과정에서 연결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명이 번성하도록 영향을 주는지 아니면 그들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지 주도면밀하게 파악해야한다.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들은 바쁘고 거칠고 피곤한 일터에서 소명으로 일하며 기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제사장 나라 (출19:5)로 선택하신 것은 우상 숭배의 땅 가나안을 거룩한 하나님 나라로 바꾸라는 의도였다. 제사장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직분자다. 제사장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항상 듣고 마음에 되새겨야 한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신6:3

노동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다스리라, 경작하라,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과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고 자기 일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 개인적인 성경 묵상과 공부를 통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일에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루터는 평신도들의 노동이 성직자들의 종교적 활동만큼 거룩한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사실을 교회 역사에서 처음으로 주장했다. (노동 소명론) 이러한 노동관은 기독교에서 경천동지 할 만 한 주장이었다. 기껏 해야 신앙을 위한 도구로서 가치를 인정받던 평신도들의 노동이 루터에 의해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신적 가치를 부여 받았다. … 루터는 우리가 각자의 일터에서 하는 일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했다. … 그는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하는 일을 하나님이 우리의 가면을 쓰고 하시는 일이라고 설교하기도 했다. … 일터에서 성실과 근면과 절약은 청교도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었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청교도들의 노동 소명관이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종교개혁가들이 발견한 노동 소명론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교회 밖 세상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했다. 이와 더불어 노동 소명론은 부르주아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세상 소명을 강조함으로써 영적 소명을 잠식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막스 베버의 비판도 타당성이 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일터 상황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응시하고 귀기울여야만 한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세상을 생육하고 번성하는 생명의 동산으로 가꾸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세상을 생명이 번성할 수 있는 선한 곳으로 만드시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제 2장. 사랑하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일하기)

요약: 돈이 소명의 기준이 되었던 과거 기독교적 자본주의의 부작용 → 사실, 제자의 삶은 좁은 길, 순교자의 길 = 제자는 ‘악한 세상의 반역자’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사적 사랑 = 아가페 사랑, 공적 사랑 = 공의 추구 → 제자들은 자기 능력의 한계에 머물기 보다는, 성령의 은사를 구하며 선한 일로 사람들을 탁월하게 섬기길 원한다.

… 돈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간다.

루터가 발견한 소중한 노동 소명론이 근대 유럽 사회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던 것은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돈의 위력이 유럽 문명을 휩쓸었던 영향이 크다. 교회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돈의 위상, 효율성에 대한 근대인들의 맹신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뒤로 후퇴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종교적 영역 내 활동에서만 아니라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제자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따라서 제자는 일터에서도 자신의 유익을 우선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성공을 이루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목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자는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유익 얻는 것을 기뻐한다. … 이런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고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제자의 운명이다. 제자의 삶은 좁은 길을 걷는 삶이며 순교자적 길을 걸어가는 헌신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하늘 시민권을 가지고 지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말한다 (빌3:20). 베드로는 세상에 흩어져 살아가는 나그네 라고 했다 (벧전1:1) 그리스도 제자의 멤버쉽은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제자는 자신의 생존과 교회의 성장을 위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다. 제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보낼 만큼 사랑하신 이 세상(요3:16)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는다. 세상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로 바꾸도록, 세상의 통치자를 ‘권세와 정사’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이 제자들이 비밀스럽게 추진하는 ‘혁명’이다.

달라스 윌라드는 … 제자들을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을 삶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제자는 언제든지 세상과 대립하고 세상을 변혁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는 ‘악한 세상에 대한 잠재적 반역자’라는 의미다. 윌라드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안에서 세상을 변혁하는 누룩같은 존재로 이해했다.

일터 현실과 그리스도의 이상 가운데 겪는 갈등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창조적으로 해소된다. … 예수님은 유다와 베드로를 비롯한 열 두 제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팔고 부인하고 도망갈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종처럼 그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루터는 <상업과 이자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상인들이 어떠한 자세로 이윤을 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대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에게 유리하게 물건을 판매한다고 말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가 해야하는 대로 혹은 올바르고 적절한 방식으로 물건을 판매한다.” 그대의 판매 행위는 마치 그대가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신이나 된 듯 어떤 법과 한계를 초월해 자기의 힘과 의지에 따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대의 상업 활동은 그대의 이웃에게 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대의 이웃에게 어떠한 해로움과 손해를 주지 않도록 법과 양심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그대는 이웃에게 상처를 주면서 이윤을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루터는 상인이 물건의 의로운 가격을 매겨야 한다고 말했다. 의로운 가격은 폭리를 거부하고 판매자가 상업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만을 반영해야 한다. … 아퀴나스가 말한 정의로운 가격은 생산 원가와 생산자의 생계비,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비로만 이뤄진다.

라인홀드 니버는 사적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행위에는 아가페 사랑이 필요하지만 공적영역에서는 정의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일터에서 정의를 실현함으로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당한 가치와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 제자들은 정직하게 일함으로써 정의를 지킨다. 정직은 시민 사회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윤리 규범을 지키며 일하는 태도다. … 제자들은 불의와 싸우고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이웃의 생명에 유익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에 따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일터에서 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다.

공의는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법정적 개념을 훨씬 뛰어넘어 상대가 옳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랑이다. …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도 당장 정의를 외치며 벌을 주기 보다는 벌을 유예하면서까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도록 도와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이다. 루터가 로마서에서 발견한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롬1:17)’는 우리의 죄를 벌하시는 정의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지킬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언약을 지키도록 도와주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는 신실하심을 보여주셨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친구처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 … 공의는 단순히 옆에 있어주는 사랑이 아니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는 사랑이다. … 동료 직원들의 잠재 능력을 발굴하고 키워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에서 실천해야 할 공의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자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다. 정의와 공의로 표현되는 사랑과 달리 자비의 사랑은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누리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24:19)

인본주의적으로 사고하는 많은 현대인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위를 개인의 윤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서에서 자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택이 아닌 의무다. 특히 신명기 법전(신12-26장)에는 고아, 과부, 나그네, 레위인 등으로 대변되는 생존 취약 계층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규들이 촘촘히 배치돼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였다.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15:11)

성령은 우리에게 탁월한 능력을 덧입혀 주신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떠남을 예고하면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보다 큰 일 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14:12) 이 말씀은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제자들이 선한 일을 행하도록 도우셔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게 도우신다는 약속이다. 전 세계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이 하셨던 놀라운 일들보다 훨씬 더 놀랍고 큰 일을 해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이 약속은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다. …

성령의 가장 크고 좋은 은사는 사랑의 은사다. 성령을 우리가 이웃들을 탁월하게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역을 하신다. …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 왕이 묻는 모든 일에서 그 나라 박사들보다 열 배나 더 뛰어나게 지혜롭고 총명했다. (단1:17-20) 그들의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의 영이 주신 선물이었다. … 성서는 브살렐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성막과 봉사도구들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직장에서 적당히 일하는 방식으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 … 제자들은 자기 능력의 한계 안에 머물기 보다는 성령의 은사를 구하며 직장 동료들과 소비자들을 탁월하게 섬기기를 원하게 된다. … 보아스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이삭줍기 규정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율법 규정을 훨씬 초과해 이방 여인 룻이 경제적으로 무력한 시어머니와 함께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 유다 땅으로 들어온 이방 여인에게 하나님을 대신해 호의를 베풀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노동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펼치신다.

제 3장. 기도하라 (영적훈련으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요약: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 “기도”와 “안식”으로 끊임없이 영적 훈련을 해야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사랑을 이루며 소명으로 일하려면 끊임없이 영적 훈련을 해야 한다. 수동적인 믿음은 일터에서 거의 무용지물이다. …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걸어오는 영적싸움에 방어만 하기 보다는 때론 공격적으로 영적 싸움을 걸어야 한다. …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신앙과 분리되는 삶을 경험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일터 현장에서 해야 하는 영적 훈련을 무시하거나 게을리 하는 것이다.

청교도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지적한 성령충만한 삶과 관련한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첫째, 성령은 영적 훈련과 같은 수단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둘째, 거룩한 습관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다. 패커는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한 영적 훈련으로 기도, 교제, 예배와 같은 종교적 행위 뿐 아니라 생각하고, 경청하고,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살펴보고, 다른 사람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일 등을 제시한다.

[갈등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갈등을 피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성령에 의지해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나가겠다는 결단과 의지와 믿음이 필요하다. …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에서 얌전한 예스맨으로 있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어 직장을 변화시키기 원하신다.

책임적 위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7가지 갈등: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윤의 추구, 사랑의 요구와 경쟁의 현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과 이윤에 대한 의무감, 겸손하고자 하는 소망과 성공에 대한 자하, 가정과 일, 자비롭게 주고자 하는 마음과 재산을 쌓고자 하는 욕구, 세속 도시 안에서 신실한 증인이 되는 것 =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갈등’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살려면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그것도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고 일만 하면, 우리도 악한 세상을 닮아갈 수 있다.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소연 하며 기도하지 않는 사이에 하나님과의 사귐은 멀어진다. 바쁜 일상이 하나님을 내 일터에서 멀어지게 한다. 바쁘면 바쁠 수록 더욱 더 기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 우리는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우리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 분이 우리를 통해 일 하시도록 지속적으로 영적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 … 일터에서 의지적으로 반복적인 훈련을 하지 않으면 기도하는 습관이 생기기 어렵다. 습관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쁜 일터에서 이렇게 기도하라] 1. 어디서나 짧게 기도하라 2.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기도하라 3. 위기 상황에서는 함께 중보 기도하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6:18)) 4. 일터에서 만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신앙인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기도만큼 중요한 것은 안식이다. 안식은 바쁜 일에서 떠나 육체적인 쉼을 누리는 차원을 뛰어넘어 홀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예배 행위다. … 쉼을 요구하는 안식일 계명은 고달픈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권유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만 하는 ‘의무’이다. … 안식일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우리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기억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날이다.

[안식을 연습하라] 1. 퇴근 후 안식을 누려라 (퇴근 후 안식을 누릴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면, 하나님께 안식 할 수 있는 환경을 달라고 기도하며 안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음의 욕심을 줄이거나 포기해야 한다. 맞벌이 부브는 서로 번갈아 안식을 누리도록 상대를 배려하고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2. 묵상하며 잠깐의 안식을 누려라 3. 서로 안식을 선물하라 (안식의 식탁에 초대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식탁이 항상 이런 긍정적이고 행복한 언어들로 충만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는 식탁 교제를 통해 서로를 향해 안식을 선물한다. 이러한 식탁 교제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4. 여행을 떠나라

다니엘은 시기와 모략과 반역이 난무하는 일터에서 매일 변함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소명에 충실했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기도할 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할 수 있다. 기도는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제 4장. 인내하라 (종말론적 소망으로 일하기)

요약: 소명은 수많은 시행 착오 가운데, 새 하늘을 소망하고 믿음으로 인내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소명을 주심으로 우리가 성숙의 길을 걸어가도록 말씀하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격려하신다.

소명의 길은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은 길이다. … 소명은 어떤 완성된 목표에 도달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라는 격려이며 지혜의 말씀이다. 단기적 결과와 평가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긴 호흡으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요청하는 소명의 삶은 익숙하지 않은 라이프 스타일이다. …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론은 자칫 두려움과 좌절과 죄책감만 안겨주기 쉽상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 ‘소명 받은 자가 마땅히 살아야 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지면 소명론은 그냥 마음만 힘들게 하는 개념일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명을 어떤 완성된 신앙 행위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 길을 걸어가도록 격려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소명은 우리에게 부담과 죄책감이 아니라 시행 착오 속에서 부단히 새로워지려는 노력으로 다가오게 된다. … 제프 고인스는 <일의 기술>에서 … 소명이란 일상의 삶이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얻게 되는 자기 발견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소명이란 어느 순간 하늘로부터 떨어진 계시의 섬광이 아니라 부단히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는 노력 속에서, 그것도 불가피하게 경험해야 하는 수많은 시행 착오 속에서 발견하는 자기 삶의 궤적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소명을 어떤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믿음과 함께 자라나는 깨달음으로 정의해도 무방하다.

우리는 일터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믿음의 노력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소명은 세상 한 가운데 있는 일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식적이고 지난한 과정을 성실하게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모호한 현실을 뚫고 우리의 믿음과 소명이 함께 자라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는 종말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에 대한 소망은 신앙에 적대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 지금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소명으로 일하려 해도 희미하게 보이고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때에는 우리의 소명을 완전히 이해하고 성취한다. (고전13:12) 우리의 사랑은 아직 부분적이지만 종말에는 완전해진다.

[종말론적 소망으로 일하기] 1. 종말의 관점으로 일하라 2. 미완성을 받아들이라 3.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라 4. 쉽게 떠나지 말라 5. 그러나 떠나야 할 직장은 빨리 떠나라 6. 퇴사 뒤에도 계속 기도하고 축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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