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썰전의 꿀잼 패널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유시민씨가 2011년 이명박 정권 시기에 지은 책이다. 용산 참사와 4대강 공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 MB정부의 독단적인 정책 시행에 시민들은 촛불로 맞섰다. 시민과 학생들의 평화적 저항에 정부는 물대포와 버스를 이용한 성벽쌓기로 대응 했다.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한 때도 있었지만 이는 겉치레에 불과할 뿐, 시민들의 요구는 정부 시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시민들은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참고 기다렸지만,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그 기대는 허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2017년, 대한민국 국민은 다시금 ‘이게 나라냐?’라고 울부짖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물고기는 물가를 떠나기 전까진 물의 소중함을 모른다. 국가를 ‘거의’ 잃어버린 지금에서야, 우리는 국가가 그 구성원인 국민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 독립운동과 광복, 6.25 전쟁,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값으로 치루며 만든 나라 대한민국. 국가가 무엇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해 생을 포기했는지, 그 사람들이 원하던 국가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대한민국이 그들이 그리던 국가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더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고, 이를 위해 기여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유시민씨의 책 <국가란 무엇인가>는 좋은 공부가 된 책이다.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이집트의 민주혁명과, 용산참사를 대조하며 시작하는 이 책은 현대 국가가 갖는 특징과 역할, 책임을 설명한다. 국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그 특징/역할/책임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를 위해 작가는 그 관점을 4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헌납하는 신성한 계약을 맺은 바, 국민은 국가의 보호와 통제의 대상일 뿐 이를 전복할 권한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은 후에 전체주의, 파시즘과 결합하여 국가를 위해 개개인의 국민이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논리로 쓰이게 된다. 히틀러는 독일 정권을 잡은 후 이렇게 선언했다. “공익은 사익에 우선한다.” 극단적인 공리주의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전체주의 국가가 진정으로 사익에서 앞서 공익을 우선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공익을 핑계로 개인의 권리를 억압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한 집권 세력은, 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착취하고 억압하여 자신의 부와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이용할 뿐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국민들의 공분이 공명하는 순간, 국가는 전복되고 새로운 정부가 수립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전제주의 국가는 지식인을 감옥에 넣고 언론을 장악하며 전쟁의 위협을 과장하여 국민을 협박한다.

   두번째 국가론은 자유주의자들의 철학에 기초를 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이들은 인간이 누려야할 여러 가치 가운데 자유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홉스가 말한 계약에 의해 자신의 권한을 국가에 넘겨주었다 하더라도, 각 개인은 그 권한을 언제든 거둬들일 자유가 있다. 더군다나 그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를 전제하면, 자연스레 정부는 시민들의 삶을 고양시킬 책무를 지고 필요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존 로크는 리바이어던 출판 40년 후에 <시민정부론>에서 주권재민의 원칙과 법치주의를 주장했으며,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사회 계약론>에서 시민의 저항권을 근거로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가는 더 이상 ‘세속의 신’이 아니라 공공재의 공급자에 불과하다는 발표를 했고, 공리주의자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주의 국가 이론을 정립했다. 그리고 이 자유주의 국가론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현대 국가의 헌법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 헌법 1조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다음은 마르크스(막스)의 국가론이다. 국가를 계급지배의 도구로 본 막스는 역사를 계급 전복의 역사로 이해한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왕과 귀족의 권력을 부르주아가 전복한 것이 그 증거다. 막스의 변증법적 역사관에 의하면 역사는 결국 노동자(프롤레타리아)의 독재로 귀결된다. 그리고 <공산당 선언>을 통해 그러한 역사를 만들 것을 세계 시민에게 선언한다. 막스의 논리전개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과거의 역사 분석을 통한 일반론의 도출이 혁명의 정치적 당위성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과학자로서 자본이 노동자와 시민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그의 예리한 관찰은 시민의 자유를 최우선하는 자유주의 국가론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자본의 억압을 제한해야 한다는 관점은 북유럽의 사민주의로 대표되는 진보적 민주주의자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서 본 세 가지 국가론 외에 플라톤 등 도덕철학자들이 주창한 목적론적 국가론도 있다. 인간은, 조직은, 그리고 국가는 각자에 걸맞는 ‘올바른’ 삶과 행동양식이 존재하고 국가와 정치는 그 올바른 바를 추구하는데 궁극의 목적을 둔다. 맹자는 사람은 모름지기 인/의/예/지의 네 가지 덕을 보존하는데 힘써야하고 국가가 이를 도와야한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옳은 말로 들리지만, 이런 국가론은 자칫하면 국가주의 국가론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가 앞장서서 도덕적 옮음을 정하고 주장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시민들의 생각가 다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여러 국가론과 그 성립 배경을 알아봄으로써 국가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나서 작가는 구체적인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국가란 무엇인가>를 마무리 한다. 그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애국심이란? / 혁명이냐 개량이냐? / 진보정치란? /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국가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데 매우 중요한 질문들다.  애국심을 그 자체로 실존한다고 볼 수도(피히테),  국가가 국민들을 선동하고 조작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도 있겠지만 (톨스토이),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발생한 온갖 갈등과 원한이 ’망각과 용서’란 과정을 거쳐 공동체에 대한 애정으로 승화된 것 (르낭)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란 상처입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보듬는 공동체의 최대 단위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작가는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베블런의 <유한 계급론>, 김상봉 교수의 <낡은 진보와 이별하라>,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칸트의 ‘도덕법’, 막스베버의 ‘신념윤리’를 소개하며, 국가에 관한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유시민씨는 이 책의 개정판을 냈다고 한다.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원판을 사서 본 사람들은 절대로 개정판을 읽지 말라’라는 겸양의 조언을 던지셨으나, 조만간 사서 읽어볼 것 같다. 6년의 시간이 그의 국가관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워낙 유시민씨 팬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구매를 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유시민씨는 이 책의 최대 장점을 ‘100여권에 해당하는 어려운 책을 사람들앞에서 마치 읽은 것처럼 얘기할 수 있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서평에서 언급된 책들 가운데 읽어보지 않은 책들은 꼭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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