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읽을 것인가 - 고영성 지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고영성 지음

   이런 일이 있었다. 1일1권 읽는 ‘독서력’이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독서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니? 좋은 책 고르는 방법 좀 알려줄래?” 하고 물으니, 알쏭달쏭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 ~ Yes24는 x퍼센트 적립해주고, 몇권 이상 사면 y퍼센트 적립해줘. 네이버 북스 링크타고 가면 무슨무슨 쿠폰을 준대”. 

“응????????”

   어릴때부터, 독서를 ‘좋은 책을 잘 골라서 신중하게 읽고 소화시키고 외워서 완전히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책 한권을 고를 때도 굉장히 신중하게 골랐고, 한 권을 읽더라도 한 줄 한 줄 달달 외운다는 생각으로 아주 느리게 읽었다. 그것만이 올바른 독서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독서의 달인 고영성씨가 비추하는, 안 좋은 방법이다. 평생을 ‘별로’인 방법으로 독서한 것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잘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책, <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야기를 해보겠다.

   고영성씨는 책을 즐겨 읽다 보니 어느새 ‘프로독서가’가 되어버린 사람이다. 1년에 10권의 책도 안 읽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금융위기가 왜 일어났지?’ 하는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한 경제도서가 어느새 100권을 넘었고, 가속이 붙어버린 후로는 1년에 300권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관심 분야도 인문, 심리, 역사, 글쓰기 등으로 넓어졌다. 지금은 읽은 책을 소개하고, 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아래는 책 속의 챕터들을, 내 나름대로 재배치한 것이다.

1) 극복해야할 장벽인 난독(亂讀)편.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글들을 읽으며 ’나는 그래도 텍스트를 꾸준히 읽지’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웹브라우저를 통해 읽는 텍스트와 읽는 방법, 그 모두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웹/모바일기기를 통해서 보는 글들은, 그 자체로 이미 압축적으로 요약된 짧은 글이다. 글의 길이도 A4용지 한 장 이상을 넘어가는 글은 휙휙 넘기기 일쑤이고,  웹이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어서 호흡이 긴 글을 지양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이미지를 활용해 독자들을 배려한다. 그만큼 ‘읽기의 난이도’가 줄어든다. 온라인의 글을 읽는 방법은 어떨까? 웹페이지를 읽을 때,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다. 차고 넘치는 콘텐츠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을 때와 달리 웹페이지를 읽을 땐,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두뇌영역이 활성화 된다고 한다. ‘이 페이지가 정말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인건가’ 하고 계속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이다. 그만큼, 내용 자체에 집중하기 힘들게 된다. 글을 안구운동을 분석해봐도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온라인 텍스트를 읽을 때 안구 운동을 보면, 횡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읽는다고 한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핵심내용만 간추려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이런 식의 읽기를 통해서는 독서의 열매를 얻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글을 통해 이미지, 장면, 움직임, 심지어 향기까지 상상해 낼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없다. 복잡한 구조를 갖는 글에서 핵심내용을 간추려내고 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독해력을 기를 수 없다. 한 줄, 한 줄, 여유로이 읽어가며 어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사고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를 줄여서 난독(亂讀)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뉴스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는데서 멈춰선 안된다. 책을 읽어야 한다.

2) ‘너희도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주는 근거들이 담긴 독아(讀我)편.

모든 일엔 자신감이 중요하다. 과연 내가 ‘독서가’가 될 수 있을까? 책 잘 읽는 사람은 막 하루에 한권, 혹은 그 이상을 읽는다는데 내가 과연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쓰게 된다는데, 나는 책 읽는 능력이 미천하니 글도 당연히 못쓰겠지? 에이, 그냥 내 일이나 잘하자. 책은 무슨 책이야. 이런 체념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점을 들리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독서는 사실 쉽지 않다.(…) 정말 열심히 읽은 것 같은데, 책 하단에 적혀 있는 쪽수를 보면 겨우 50쪽 정도 읽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읽자고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그러다가 그대로 일주일, 때로는 몇 주가 흐르기도 한다. (…) 이런 식으로 매번 계획을 세우고 도전을 하지만 좌절이 거듭되었다. 먼저 드는 생각은 자책이었다. “난 이것 밖에 안되는 인간인가?”

 정체성은 바닥에 검게 굳어 딱 달라붙은 껌딱지 같은 것이 아니다. 조지 버나드 쇼가 “삶은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단 것 처럼, 정체성이라는 불변하는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정체성이 바로 본질이다. 인식이 변하면 본질도 바뀐다.

한 마디로 줄이면, ‘적어도 독서는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그 다음엔 저자가 강력추천하는 독서법인 다독(多讀)편.

많이 읽으라고? 난 이미 난독이라, 글을 잘 소화하지 못해서 고생하고 있는데 일단 많이 읽으라고? 다독하라는 말을 들으면 답답해지는 이유다. 저자가 이에 대해 주는 팁은 ‘재미있고 쉬운 책을 많이 읽어라’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질을 포기하고 양을 늘리라는 뜻이다. 저자가 인용한 마쓰오카 세이고의 <다독술이 답이다>를 다시 인용해보자.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편이 좋다.’라는 등의 말은 언뜻 휼륭해 보입니다만, 이런 조안만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조언만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저라면 오히려 그 반대로 하라고 권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자꾸자꾸 읽읽어라. 자신에 맞는 책을 찾기보다는 적당히 멋있어 보이기 위해 읽어도 좋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권하고 싶습니다”

‘오케이. 그래. 너말대로 서점에가서 재밌있고 쉬운 책을 사왔다. 그래도 난 책이 잘 안 읽히는데 어쩌면 좋지?’ 란 질문에 저자는 자신의경험을 몇 가지 들려준다. 우선, 여자를 좋아하는 남성인 저자는, 여자들이 많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상상에 빠진다. ‘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이 책을 읽는 매력적인 남성이야. 저 여자들이 반하겠지? 후후’.그것이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이 속물같이 느껴지더라도, 자뻑같이 느껴지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보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그 외에, 독서모임에 가입을 해서 스스로에게 책을 읽는 의무를 부여하거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럼, 다독을 위해 어떤 책을 읽을까? 책을 고르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분야를 정해서 읽는 연관도서를 읽어들이는 계독(繫讀), 전방향으로 고르게 읽는 남독. 계독은 독서량을 늘리는데 좋은 방법이다. 책 한권을 읽으면, 다음에 읽을 책을 자신도 모르게 예습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저자 고영성씨는 독서 초보일때, 경제도서를 한권 한권 읽다보니 어느새 내공이 쌓여서 다독가가 되어버린 경우다. 계독은 자신의 취미, 업무, 호기심 같이 관심이 많은 영역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4) 도서 범위를 넓혀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남독(濫讀).

   계독은 특정분야의 지식 수준을 높이고, 다독을 쉽게 도와주는 좋은 읽기 방법이다. 하지만, 계독만으로는 아집이 세진다거나 새로운 자극이 적어 창의력, 비판력을 기르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계독을 통해 독서량이 어느 정도 늘게 되면, 남독을 시작하자. 남독은 간단하다. 온갖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 가운데 쉬운 책을 골라 읽기. 자연과학과 공학을 공부해온 내 경우엔, 사회학이나 문학, 철학, 예술 분야 책을 고르는 것이 되겠다. 

 물리학자인 아르망 투르소는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라고 했으며, 생물학자이자 화가인 C. H. 워딩턴은 “세계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오직 전인(whole man)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는 기술자, 순수 과학자, 예술가 중 하나만 되는 것을 드러내 놓고 거부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라고 말한바 있다.

다시 말하지만 창의성은 낯선 것들의 연결이다. 결국 창의적 인간이란 그 뇌 안에 낯선 것들이 들끓고 있고, 그 혼돈 속에서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인간이다. 

5) 특정한 관점이나 목표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고 소화하는 관독(觀讀).

   단순히 “나는 책을 많이 읽고 말겠어!!”라는 생각만으로는 책을 한 줄 한 줄을 읽어가는 과정이 힙겹기 마련이다. 앞서 다룬 다독과 남독의 습관을 기르고, 더 나아가 글쓰기에 이르도록 돕는 마음가짐이 있다. 바로 관독. 특정한 관점이나 목표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어찌보면 계독과 남독의 하이브리드 방법이라고 할 수 도 있겠다. 책을 읽을 때 풀고자하는 문제, ‘경제위기가 왜 생긴거야?’, ‘우주는 어떻게 생긴거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식으로 구체적인 방향을 갖고 책을 읽어가는 것이다. 단순히 저자의 글을 읽고 소화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고 다른 책과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에 더해 한 가지 문제에 다양한 관점을 취해, 혹은 전혀 다른 문제를 특정한 관점으로 보면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도 있다.

<생각의 탄생>에서는 “명백히 달라 보이는 두 개의 사물이 중요한 특질과 기능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학문과 예술작품, 불후의 과학이론, 공학적 발명을 이루어내는 일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관독이 바로 그 일을 도와줄 것이다. 

   내가 요즘 즐기는, 그리고 저자가 추천하기도 한 관독 방법은 “블로그에 꼭 쪽글을 올리고 말겠다!”라는 다짐을 하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럼 읽다가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부분을 찾으면 꼼꼼히 밑줄을 치게 된다. 챕터 하나를 넘길 때마다, 전체 내용에서 이 챕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되묻게 된다. 전체 구조와 그림을 모르면, 독후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읽다보면, 저자가 글을 엮은 방식과 다른 순서로 쪽글을 쓰기도 하고, 혹은 저자를 비판하는 글을 쓸 수도 있게 된다. 덕분에 텍스트를 더 주체적으로 읽게 되고, 나만의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된다. 덤으로 글쓰기 실력도 올릴 수 있다. 

   

   6~10번의 읽기 방법들은 농구에서 ‘왼손은 거들뿐’ 같은 방법들이다. 다독, 남독, 관독을 중심으로 읽어가며 이에 곁들여 책을 읽으면 ‘사람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이다. 

6) 줄을 긋고 책 옆에 메모를 해가며 읽는 필독(筆讀).

아우구스티누스: 이런 책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프란체스코 : 책은 읽을 때는 매우 유익하지만, 손을 떠나나자마자 그 책에 대해 느꼈던 모든 감정도 눈 녹듯 사라지고 마는 걸요. 

아우구스티누스: 만약 자네가 적절한 여백에 약간의 메모를 간결하게 적어 놓으면, 아마 독서의 열매를 쉽게 즐길 수 있을 걸세.

프란체스코: 어떤 종류의 메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우구스티누스: 자네에게 유익할 것 같은 어떤 문장이든 접하게 되면 분명히 표시해 두게. 그렇게 하면 그 표시는 자네의 기억력에서 석회의 역할을 맡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멀리 달아나고 말 걸세.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시험을 보고나면 포맷된 하드디스크 마냥 전혀 기억을 못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보조 도구가 있는데, 그것이 필독이다. 책을 읽으면서 줄을 긋거나, 간단히 메모를 하는 것. 아무래도 쉬운 책보다는 어려운 책, 기억하기 힘든 책, 책의 구조를 머리 속에 담고 다니기 힘든 스케일 큰 책들에 도움이 된다. 서울대 로스쿨 조국 교수,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경우는 책을 아주 깨끗이 읽는다고 하니,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나는 필독 없이는 답답해서 읽기 힘들어하는 편이다.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것으론 성이 안 차는 이유다.  

7) 책장을 덮고 가만히 책의 내용을 되뇌여보는 엄독(奄讀).

나는 독서의 완성은 ‘엄독’이라고 생각한다. 엄독이란 책을 덮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읽는 행위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는 ‘독서의 자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책을 덮고 난 후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책과 세상을 연결하는 것 등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읽는 행위에서 떠남’을 의미한다. 이는 ‘지속 가능한 독서’를 추구하는 것으로, 책을 덮고 여유를 갖고 휴식을 취하며 산책을 하고 잠을 자며 꿈을 꾸는 것이다.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 먹었으면 소화해야하고, 이를 자양분 삼아 삶으로 환원해내야 한다. 책의 주된 내용을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비교하고, ‘셀프토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특정 문제를, 세상을, 삶을 보는 관점을 업데이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를 엄독이라고 부른다. 혼자 커피를 홀짝이고 음악을 들으며 엄독할 수 있을 것이며, 친구들이 책을 읽으며 가졌던 생각들을 나누고 토론하며 엄독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서가 단순히 눈으로 텍스트를 읽는 행위에 그쳐선 안된다는 것이다. 글은 말을 종이 위에 옮긴 것이고, 말은 대화를 하기 위한 도구이고, 대화는 생각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다. 독서는 결국 우리 생각을 어떤 방향으로든 바꾸기 위한 행동이 아닐까. 

8)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방법인 재독(再讀).

9) 꼼꼼하게 읽어 내공을 키우는 만독 (慢讀).

10) 소리 내어서 읽는 낭독(朗讀).

 

   재독, 만독, 낭독은 모두 텍스트를 제대로 된 소화하기 위해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이다. 추상적인 읽기 방법인 엄독을 구체화한 방법인 것 같다. 재독과 만독은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을 때, 좋은 방법이다. <작은 대학>이라는 사회학 고전 읽기 동아리를 들었을 때, 플라톤의 <국가>, 루쏘의 <사회계약론>,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니체의 <도덕의 계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롤즈의 <정의론>등의 고전들을 만독으로, 재독으로 읽었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워서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텍스트들이었기에, 만독할 수 밖에 없었다. 읽고나도 전혀 이해가 안되서 재독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해당 고전의 전문가 교수님들의 지도로 도움으로 대략의 내용은 이해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는 시간이 남아돌아 마땅히 할 게 없는 공익근무요원 시절이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아마, 요즘처럼 바쁜 시기엔 하기 힘든 방법이 아닐까. 쉬운 텍스트를 많이 읽어가며 독해력을 늘리는 다독이 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글맺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정말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다. 존경하는 유시민씨(나는 유빠!!)의 <어떻게 살 것인가>, <글쓰기 특강>을 읽고 나서, 들었던 궁금증이 책 제목으로 똭 써있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최근들어서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싶은 욕심에,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던 차에, 이 책을 통해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에 있었으면, 고영성씨의 독서 강의를 수강신청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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