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 '컨택트' 원작) -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 '컨택트' 원작) - 테드 창

<Story of Your Life>

   <네 인생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컨택트>로 소개된 SF 작가 테드 창의 단편소설이다. 소설의 소재는 미지의 존재와의 만남과 소통, 언어와 철학의 차이가 가져오는 세계관의 차이다. 소설은 7개의 다리를 가져 헵타포드로 불리는 문어모양의 외계인이 지구 궤도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그들은 신기하리만치 지구 곳곳의 상공에 머물러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오직 체경(looking glass)를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줄 뿐이다. <인디펜던스 데이>같은 기존의 우주공상과학물과는 전혀 다른 평화로운 패턴이다.

   미국의 우주 관할 부처와 국방부는 헵타포드와 소통하기 위해 의사소통에 도움될만한 학자들을 불러모아 ‘헵타포드 언어학습팀’을 구성한다. 이렇게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와 이론 물리학자 게리 도널리,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 헵타포드의 음성언어(A)와 문자언어(B) 가운데, 시각적 장비를 이용할 수 있어 좀 더 분석하기 용이한 헵타포드 B에 집중하기로 한 두 사람은, 헵타포드 문자를 분석하던 도중 인류와 헵타포드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시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위 사진은 영화 <컨택트>에서 따온 이미지다. 맨 위의 사진에 보이는 방법(단어하나를 제스쳐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의미의 최소 단위인 단어들을 학습한 루이즈는, 각 단어들을 링 형태로 조합연결해서 하나의 문장, 의미군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몇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무엇보다 구두점이 없어서 문장의 시작과 끝을 알 수가 없고, 단어의 조합 순서를 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하나의 문장안에서 ‘의미의 흐름’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은 인간의 언어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각 요소를 문자가 배치된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헵타포드는 문장을 ‘통째로’ 이해해 버리는 것이다. 마치 그 문장을 보기 전부터, 그 문장을 쓰기 전부터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이.

   헵타포드B의 이해를 위한 단서는 물리학자 게리의 물리학과 수학을 이용한 의사소통에서 발견된다. 헵타포드의 대화 결과, 그들은 주기율표와 산수를 잘 알고 있는 반면, 기하학과 대수, 가속도와 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게리가 이런 개념들을 소개하면 헵타포드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갸우뚱 할 뿐이다. 우주여행 능력을 가지고 있는 헵타포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한 물리학적 지식을 가질터다. 그런데도 그들이 기초적 물리개념인 ’가속도’를 모른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게리는 대화를 통해 헵타포드가 ‘변분법’을 이용한 물리학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변분법(Variational Pricinple)은 페르마, 라그랑지, 파인만같은 물리학자들이 빛의 경로에 대한 분석,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재해석을 위해 사용한 새로운 물리학적 접근 방식이다. 이 물리학적 접근 방법은 뉴턴이나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입자와 힘의 상호작용을 배제한채, 자연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문제의 풀이 방법은 간단하다. 하나의 물리량, 빛의 경우엔 시간, 입자운동의 경우에는 Action(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경로를 찾기만 하면 된다. 특정 물리량을 최소화하는 시공간상의 경로를 찾기만 하면 입자나 빛은 그 길을 따라 간다. 변분법에서 ‘가속도’나 ‘힘’같은 개념을 도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물체의 운동을 해석하는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힘’ 따위를 모르더라도 입자의 운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변분법을 배우지 않고 뉴턴의 힘을 먼저 배우는가? 그 이유는 ‘힘’의 직관성에 있다. 뉴턴에 따르면 한 입자가 특정한 지점에서 특정한 힘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가속도가 발생한다. 우리는 인과율에 대한 믿음, 즉 현상이 발생하기 위해선 이를 위한 원인이 존재해야하고 그 원인은 현상이 발생하기 전부터 작용하고 있어야한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과학 뿐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도 관찰 되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직관’의 범주, ‘당연한 것들’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힘이라는 원인이 발생하고, 그 다음에 물체가 움직인다는 직관적인 이해. 

   하지만, 변분법은 다르다. 빛 알갱이가 하나가 스크린을 향해 달리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빛 알갱이는 스크린의 한 점에 도착하기 위해서 어떤 경로를 지나야 하는지 정할 필요가 있는데, 변분법에 따르면 미래에 도착할 지점으로 가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경로 중)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통해 달려야 한다. 즉, 빛 알갱이는 자신이 달리기 전부터 세상의 모든 가능한 경로들의 도착시간을 다 계산하고 비교해서 가장 짧은 거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빛 알갱이가 이 어마어마한 양의 계산을 하는데 걸린 시간은 0이다. 변분법의 방식은, 입자가 운동을 하기 전에 그 운동 경로와 방식을 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 우리의 직관과 위배된다. 문제는 이 변분법도 뉴턴의 역학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연을 100% 설명한다는 것이다.

   가정을 하나 해보자. 우리의 직관, 즉 인과율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생물학적 능력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편견과 그 편견의 재생산에 의한 결과라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원인과 결과’라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최적화된 경로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즉, 미래 사건을 미리 안 상태에서 우리의 삶을 설계하고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 테드 창은, 그리고 헵타포드는 이런 질문에 Yes라고 대답한다. 언어가 사고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헵타포드의  시간적 인과율이 배제된 언어는 변분법적 사고 방식을 반영할 뿐 아니라, 재생산한다. 그리고 이 사고 방식이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는 중이던 루이즈에게 싹트기 시작한다. 루이즈가 예지력을 갖게 된 것이다. 

   시간여행이나 예언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에서는 항상 인과율이 문제를 일으킨다. 미래를 알고 나면, 그 미래를 피하기 위해 현재에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시간의 흐름에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분법적 이해방식에선 그런 모순을 찾을 수 없다. 현재의 사건은 미래에 발생할 사건들을 적분하여 발생한 결과다. 그만큼 미래를 알고, 그것에 근거해 현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소설은 외계인의 언어를 학습하는 과정과, 루이즈가 자신의 딸에게 하는 이야기가 병치해서 진행된다. 그리고 루이즈는 언젠가 자신이 낳은 딸이, 자식을 종같이 부린다면서 툴툴댈 것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큰 상실감을 안길 것을 알면서도 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어쩌면, 루이즈가 생각했던 최적화 해야 할 물리량은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죽음까지 발생할 사랑과 행복, 삶 가운데 중요한 가치를 갖는 모든 것들의 총량이 아니었을까.

   <네 인생의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오래 기억될 작품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서로에게 초능력으로 해석될 수 있을 만큼의 능력과 행동 방식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소통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이즈가 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만들어갈 삶을 선택을 함으로서, 우리가 삶에서 가치있게 여기는 것들이 단순히 원인에 따른 결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것을,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 가고자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이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전물리학에서 ‘이런 식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하고 넘어가는 개념을 재가공해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스토리로 발전 시킨 이야기꾼 테드창의 능력에 감탄했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강한 욕심이 생기게 한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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