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베크만

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베크만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오베라는 남자를 읽었다. 추천을 받아서 보고 싶던 차에, 리디북스에서 진행 중인 ‘10년 대여’ 이벤트 덕에 5000원도 안되는 값으로 읽을 수 있었다. ( 리디북스는 나같이 돈없는 유학생들에게 정말 좋은 플랫폼이다. 특히, 올해는 1주에 한두권은 읽자고 다짐한바 있는데, 리디북스 덕에 부담없이 양껏 읽고 있다.)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친구가 묻는다. “그거 어떤 책이예요?” 이 책 <오베라는 남자>는 오베라고 하는 까칠한 59세 노인이 아끼던 부인과 사별한 후에 이웃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앞서 인용한 문단처럼, 오베는 세상을 흑과 백처럼 옳은 것과 그른 것, 쓸만한 인간과 개똥같은 인간, 사브같이 튼튼하고 안전하고 가치있는 차와 나머지 브랜드(BMW, 도요타, 볼보 등)같은 쓰레기 차로 나누는 이진법적 인간이다. 게다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멋대가리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는 인간이다.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는건지, 오베는 정말 운 좋게도 그의 유일한 색깔이 되어준 아내, 소냐를 만나 한 평생 그녀와 함께 한다. 오베는 묻는다. 그녀가 왜 자기를 택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다.

그는 그녀가 왜 자기를 택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음악이나 책이나 이상한 단어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사랑했다. 오베는 손에 쥘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남자였다. 그는 드라이버와 기름 여과기를 좋아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인생을 살아갔다. 그녀는 춤을 췄다.  “모든 어둠을 쫓아버리는 데는 빛줄기 하나면 돼요.” 언젠가 그가 어째서 늘 그렇게 명랑하게 살아가려 하느냐고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소냐는 이렇게 덧붙인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그 이후로, 오베는 세상에 대한 온갖 불평불만으로 일관하고 소냐의 명령에도 투덜대지만, 항상 그녀의 말에 따랐다. 그녀가 말하면 그렇게 되었다. 소냐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기 원칙에 빠져서 세상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오베를 끌고 스페인을 구경하러 갔고, 유산의 아픔을 딛고 학생을 가르침으로서 내리사랑을 대신하기로 결심했으며, 모두가 포기한 불량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읽혔다.  이웃과 제자들, 그리고 오베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던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따라 죽기로 결심한다. 세상을 떠난다기 보단, 그녀를 쫓아가는 식이 다짐이었다.

   오베는 천장에 줄을 매달아서, 기차에 뛰어들어서, 라이플의 총구를 머리 쪽으로 향하게 하고 방아쇠를 당겨서, 과도한 양의 수면제를 먹어서 세상을 떠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개똥같은 인간들이 자꾸만 그의 자살을 방해한다. 이란 출신의 임산부 파르바네와 그녀의 남편 패트릭, 오베 눈엔 그저 한심해 보일 뿐인 지미, 오베의 절친이었으나 주민자치회의 회장자리를 (오베에 따르면) 쿠테타로 강탈해 간 루네와 그를 노인요양원에 빼앗길 위기에 처한 아내 아니타, 기차역에서 자살하려다가 실수로 사람을 구한 걸 가지고 꼭 인터뷰를 따내겠다며 귀찮게 구는 여기자 레나, 그리고 얼어죽었으면 좋았을 길고양이까지. 아내 소냐를 따라가려는데 방해를 해대는 인간(과 고양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오베는 자살이란 숭고한 사명을 뒤로 하고, 이 귀찮은 인간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러 다닌다. 파르바네가 운전을 못해서 병원까지 라이드를 해주고, 지미가 여자친구(가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여자친구였으면 하는 친구)를 위해 고치려던 자전거를 대신 고쳐주고, 지미의 친구인 게이 미르사드가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을 돕기도 하고,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기가 어디있는지도 가물가물한 루네를 요양원에 수감하려는 공무원들과 싸우기도 해야했다. 참으로 귀찮은 일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도 세상을 살고 볼 일이라고 했던가. 색깔이 되어주는 사람이 소냐 한 사람 뿐이던 오베는 주변에 그가 아끼고, 그를 아끼는 많은 이웃(과 고양이)들을 만나 삶을 나누기 시작한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에피소드가 다 소중하고 재미있지만, 가장 극적인 장면은 파르바네의 아이 나사린이 오베를 그리는 장면이다. 오베는 이제 누군가의 색깔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뭐요?” 오베가 종이를 받으려는 동작은 조금도 취하지 않은 채 물었다.

“나사닌이 그린 그림요.”

“이걸로 뭘 어쩌라고?”

“당신을 그렸거든요.” 파르바네가 대답하고는 그의 손에 그림을 밀어 넣었다.

오베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종이를 보았다. 종이는 선과 소용돌이로 가득했다.

“이게 지미, 이게 고양이, 이게 패트릭하고 나, 이게 당신이에요.” 파르바네가 설명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하면서 가리킨 형상은 그림 한가운데에 있었다. 종이 위의 다른 것들은 모두 검정 크레용으로 그렸는데, 가운데의 형상만 색색이 폭발하고 있었다. 노랑과 빨강과 파랑과 녹색과 오렌지와 보라색이 난리를 쳤다.

“걔가 보기엔 당신이 제일 재미있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맨날 당신을 컬러로 그리는 거고요.”

그런 뒤 그녀는 조수석 문을 닫고 걸어갔다.

오베는 몇 초 뒤에야 정신을 그러모아 그녀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맨날’이라니?”

   오베는 더 이상 자살을 하지 않기로 하고 하늘에 먼저간 소냐에게 양해를 구한다. “완전히 멍청이”인건 아니지만,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들(과 고양이)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날이 왔다. 아래 문단은 그가 떠나는 날 남긴 유서와, 남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오베는 장례식에 대한 명확한 지시 사항이 담긴 편지도 남겨놓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빌어먹을 난리법석을 떨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오베는 아무런 의식도 원치 않는다고, 그저 소냐 옆에 묻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조문객 금지. 시간낭비 금지!’ 그는 파르바네에게 확실하고 분명하게 밝혔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례식에 왔다.

패트릭, 파르바네, 딸들이 들어왔을 때는 사람들이 벽과 복도에 줄지어 서 있었다. 모두들 ‘소냐 기금’이라고 새겨진 촛불을 들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게 파르바네가 오베의 돈을 쓰기로 결정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고아들을 위한 자선기금. 그녀의 눈은 눈물로 퉁퉁 부어 있고 목은 꽉 막혀서, 파르바네는 자기가 지금 꼭 며칠 동안 공기를 찾아 헐떡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촛불을 보자 그녀의 호흡이 편안해졌다. 패트릭이 오베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온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그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만족스럽게 씩 웃었다.

“젠장. 오베는 이거 진짜 싫어했겠다. 그지?”

그러자 파르바네가 웃었다. 왜냐하면 정말 그랬을 테니까.

   저자는 말한다.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가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그가 어떤 온도와 어떤 색깔의 사람이었는가, 그가 시간은 함께 한 이웃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로 결정된다고. 무뚝뚝하고 자기 원리원칙만 고집하고 소중하던 유일한 이를 잃은 오베는 성가신 이웃, 길고양이, 아이들과 여기자 덕에, 스스로 결심한 죽음보다 훨씬 나은 죽음을 맞이 했다. 책을 읽고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주인공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그의 죽음을 보고 일어나는 따뜻한 마음은 어쩌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더 따뜻한 죽음을 기대케 하는, 그로 인해 더 따뜻한 삶을 다짐케 하는 책 <오베라는 남자>. 참 마음에 드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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