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역사가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혹은 역사가의 욕망이 그 역사 서술에 담겨있다. 유시민씨가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기술하는 역사는 독재에서 민주화로, 부의 독점에서 균등 분배로 진보하는 투쟁의 역사였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기술하는 역사는 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으로 이어지는 사건들과 인류가 상호작용 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유명한 역사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읽고 싶던 차에 마침 연구실 형한테 <총,균,쇠>가 있다고 해서 얼른 빌려왔다. <총,균,쇠>는 서울대 학생들의 대여도서 목록에서 상위권인 책이기도 하다. 나도 학부시절에 빌려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두꺼운 분량에 부담을 느껴서 몇 장 못 넘기고 반납했던 기억이 난다. 

   생리학 박사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조류의 진화에 대해서 연구하기 위해 뉴기니 섬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뉴기니 섬의 정치적 리더 ‘얄리’(NEXT의 ‘병아리의 꿈’에 나오는 병아리와 같은 이름..)와 친하게 지낸다. 재레드는 명석한 두뇌와 카리스마를 가진 얄리와 함께 길을 걷다가 한 가지 질문을 듣게 된다. 

   그는 다시금 그 번뜩이는 눈빛으로 나를 찌를듯이 바라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 질문에, ‘백인이 애초에 신의 가호를 받았기 때문에, 우수한 인종이기 때문에,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런거다’라고 대답하는 부류가 있다. 성경을 빗대어 흑인의 노예제를 지지하는 경우, 특정 민족의 결함을 지적하며 차별/말살정책을 실시하는 경우, 군사력이 약한 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는 논리다. 하지만, 동어반복에 불과한 이 주장은 얄리의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이 될 수 없다. 그 논리의 빈약함도 문제지만, 이런 대답이 기존의 지배 구조, 차별적인 문화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승자/패자의 프레임으로 이해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역사 서술은 기존의 차별과 억압을 재생산할 뿐이다. 

   역사학적 설명의 목적은 그 설명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어떤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한 결과를 반복하거나 영속시키기보다는 변화시키려는 용도로 사용될 때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살인자나 강간범의 심리를 이해하려 하고 사회 역사학자들은 대량학살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 하고,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자들은 결코 살인, 강간, 종족 학살, 질병 등을 정당화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그 같은 인과 관계의 사슬을 끊고자 한다.

   역사 서술의 폭력성을 인지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책이 기존의 억압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정보를 모으고 책을 집필했다. 그리고 이 책 <총, 균, 쇠>를 통해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 낸다.

   

   기자들은 저자에게 한 권의 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 그와 같은 문장을 만들자면 다음과 같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63명의 병사를 데리고 8만 대군을 거느리는 아타우알파 황제를 제압하는 장면이다. 단순히 사람수를 나누면 스페인 군인 한명이 400명이 넘는 페루 병사를 처리한 셈이다. 한 편의 영화같은 사건이지만, 그 전과를 피사로와 그의 병사 개개인에게 돌리기는 힘들다. 피사로와 아타우알파, 스페인과 고대 페루 제국이 있기 훨씬 이전에 발생한 차이 덕분에 가능한 승리였기 때문이다. 피사로 부대는 168명에 불과했지만 쇠칼, 갑옷, 총으로 무장한 기병대였던 반면, 아타우알파의 군사들은 돌, 청동기, 나무곤봉, 갈고리막대, 손도끼, 물매, 헝겊갑옷을 걸치고 있어 거의 비무장 상태에 가까웠다. 둘째로, 그 당시 잉카족은 내전을 겪고 있었다. 1520년, 아메리카 대륙에 방문한 스페인인들을 통해 전염되기 시작한 천연두가 유행하며 황제 국가가 분열된 것이다. 한낱 전염병 때문에 내전이 일어난다는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 인구의 95% 정도가 사망할 수준이었으니 나라가 전복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게다가, 당시 잉카 제국에는 군사 정보를 보존, 전달 할 수 있는 문자체계가 없었다. 

   피사로가 성공을 거두게 한 직접적 원인에는 총기, 쇠 무기,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 집권적 정치조직, 문자등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는 그러한 직접적 요인들을 함축하고 있다. … 그러나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어째서 그와 같은 직접적 이점들이 신세계보다 유럽에 더 편중되었을까? 어째서 잉카족은 총과 쇠칼을 발명하거나, 말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짐승을 타고 다니거나, 유럽인들에게 저항력이 없는 질병을 지니거나, 바다를 거널 수 있는 배와 발전된 정치 조직을 만들어내거나 수천 년에 걸쳐 기록된 역사로부터 경험을 얻거나 하지 못했을까? 그와 같은 의문들은 이 장에서 살펴보았던 직접적 인과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책의 2부와 3부에서 다루게 될 궁극적 인과 관계에 대한 문제다.

   스페인과 페루 제국의 한판 승부는 다른 대륙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아편전쟁으로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놓치게 된 중국, 미국인들에게 북아메리카의 주권을 빼앗기고 학살당한 인디언들, 인격을 말살당하고 대대손손 노예로 살 것을 강요당한 아프리카의 원주민들. 그 모든 정복의 과정에서 책의 제목인 총-균-쇠가 주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얄리의 질문은 자연스레 다음과 같이 전환된다. “당신네 백인들은 왜 하필 1) 총을 먼저 발명했으며, 2) 몸에 전염병을 지니고 있으며, 3) 쇠를 먼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앞서 <사피엔스>에서 정리한 농업 혁명과 과학 혁명에서 찾을 수 있다. 농업 혁명을 통해 발생한 잉여 열량은 공동체의 인구수를 증가시켰다. 잉여 식량 덕에 조세를 통해 비축한 잉여식량으로 왕/관료/전업식 전문가들도 부양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제들 / 금속기술자등 숙련공 / 정보를 보존시켜주는 필경사를 먹여살릴 수도 있었다. 금속기술과 화약술에 재능이 있는 기술자들로 인해 강철 무기와 총기류가 개발되었고, 가축과 밀집된 인구 밀도로 인해 세균의 종류와 수가 급증했다. 농경사회, 중앙 집중형 권력 구조, 도시의 발생에서 이 모든 것들이 시작 되었고 이로 인해 유럽인들은 다른 대륙을 압도할 힘을 갖게 되었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리적, 생물지리학적 우연 (특히 두 대륙의 면적, 축의 방향, 야생 동식물 등)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인용문은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문단으로, 저자가 가진 역사 서술의 목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관을 통해, 저자는 차별과 억압을 재생산하는 주장을 반박하고 친구 얄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글을 잘 쓰는 똑똑한 학자이면서도,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역사가 같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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