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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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는 방식에는 크게 (1) 순차적 기술이 필수적인 서술적/인과적 이해와, (2) 이해의 대상이 되는 객체가 가진 패턴이 그 자체로 인식되어지는 이해가 있는듯 하다. 소설은 전자를 일반적 언어나 뉴턴-슈뢰딩거-하이젠베르크의 물리학에 유사한 것으로, 후자를 헵타포드B (외계인의 표기방식) 혹은 페르마-라그랑지-파인만의 물리학에 견줄수 있는 것으로 소개한다.

아마도 우리의 뇌가 생각하는 방식을 단순하게 근사해 낸 모델인 neural network의 이해방식 또한, 학습과정을 통해 의미있는 패턴을 저장하고 입력된 정보 속에 내재된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헵타포드B의 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약간 오버 하자면,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학습한 것들, 인생의 쓴맛 단맛을 경험하는 것들은 결국 마음 속에 어떤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이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우리 내면에 이해의 틀로서 쓰이게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해의 틀’은 꽤나 효율적이어서 (마치 neural network의 inference가 training보다 훨씬 쉽고 빠른 것 처럼..), 새로운 정보를 한땀 한땀 읽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탁 보는 순간 아! 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은 꽤나 괴로운 일이다. 아마도 학습과정 동안 우리 두뇌 속에선 시냅스의 군집이 힘을 합쳐 어떤 패턴을 그려봤다가, ‘아 이거 생각보다 쓸모없는 패턴인듯?’ 하면서 애써 그 패턴을 지워버리는 삽질이 반복되고 있을 것이다. 근육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아령으로 근손상을 입히고, 충분한 휴식으로 피로물질을 배출하고, 영양을 보충해 상처난 근섬유를 회복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이 학습하는 동안 두뇌 속에서 유사하게 일어난다면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찌 procrastination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꼭 책상이랑 필통 정리부터 하게되는 현상ㅋ)을 유도하지 않겠는가.

배움의 시간은 갑갑하리만큼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미지의 영역에선 순식간에 상황을 설명해 낼 수 있는 초고효율 네비게이션인 ‘이해의 틀’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움은 어찌보면 종이와 연필만 들고 처음 방문한 도시를 유랑하며 지도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견줄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런 비유를 통해 나름 배움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준비물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1) ‘원래 지도라는건 이렇게 고생해가며 그려야 제 맛이지’ 하는 약간의 무모함 (혹은 무식함?),

(2) ‘나 다른 도시도 이렇게 고생해서 꽤 근사한 지도를 그려봤어!’ 라는 약간의 자신감,

(3) 그리고 갑갑함을 이겨내고 결국 지도를 그려 냈을 때 누리게 될 기쁨에 대한 기대감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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