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계보 - 니체

도덕의 계보 - 니체

도덕의 계보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옮긴이: 김정현

   방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차라~>의 독후감을 쓰려다가 생각해보니, 출판 순서와는 달리 논리적 순서로는 <도덕의 계보>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끄적였던 간단한 쪽글을 먼저 올린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는 ‘하나의 논박서’란 부제를 달고 있다. 서문과 세 논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제1논문은 ‘선과 악’, 다시말해 ’좋음과 나쁨’을, 제2논문은 ‘죄’와 ‘양심의 가책’을, 제3논문은 ‘금욕주의적 이상’을 논한다. 도덕의 발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연구했던 도덕사학자들의 방법을 “그들은 전혀 쓸모가 없다.” 라거나 “고대 인류에 관한 심리학에 거친 손길로 폭행하는 것이 된다”(제2논문 4장) 라면서 비판한다. 니체는 ‘원래 존재했던 도덕적 개념이 변질되어 지금의 도덕을 이루게 되었다’는 식의 전개를 거부하고, 각 시대 사람들의 심리와 본성으로부터 연구를 전개한다.

   제1논문과 제2논문에서는 고대인들의 계급관계와 금전관계로부터 선-악과 죄 개념을 이끌어 낸다. 니체의 과학적인 접근은 이 책의 설득력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도덕 사학자들처럼 고대시대에 ‘원시 도덕 개념’이 존재했다고 전제하기보다는, 채무자-채권자의 관계 같은 기초적 생활 양식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더 설득력있기 때문이다. 한편, 제3논문의 주된 내용은 금욕주의적 이상이 어떻게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인간 본성이 어떻게 억압되어왔는지를 설명한다.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특유의 강렬한 문체로 기성 도덕개념들을 해체시키는데 집중한다.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도덕과 선은 사실 착취자들이 만들어 낸 도구에 불과하다.’

  

   처음 <도덕의 계보>를 접했을 땐, 니체가 사회에 대한 순수한  반항심이나 승부욕으로 책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금욕주의적 이상이 억압제로 작용한다는 제 3논문의 주장과, 억압된 무의식이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연결해 보면 니체의 노력을 좀 더 긍정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사실은 니체 자신의 인생과, 19세기 당시 유럽 시민의 정신을 ‘도덕개념’이라는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노력한 것으로 말이다. 기독교 정신만이 유일한 도덕관념으로 여겨지던 당시의 분위기상, 새로운-니체가 보기에 더 나은-도덕관념을 소개하기 위해선 기독교 윤리를 조목조목 해체하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특유의 수동적, 순종적, 채무적인 도덕에 의해 한정되는 삶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삶에 대한 답을 내고 이를 쟁취하는 주인으로서의 도덕을 위한 과정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도덕의 계보를 통해 철저히 분해된 기독교적 도덕은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의 주인공인 차라투스트라에 의해 교체된다. 사실 <도덕의 계보>(1887)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가 완성된지 2년후에 출간되으니, 일종의 프리퀄인 셈이다. (<차라~>의 독후감도 이어서 올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