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눈 앞에 닥친 문제에 몰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리듬이 깨질 수 있다. 잦은 패배에 사기를 잃을 수도 있고, 무리한 노동으로 인해 몸이 상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불운을 피하기 위해, 잠시나마 자신의 가치를 다른 시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우주적/진화적/윤리적 관점에서 현대문명/사회/나의 역할/경제/직업/성공/좋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지금보다 더 나은 우선순위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구입했다. 책의 제목이 재미있다. 왜 하필 생물학적 용어인 ‘사피엔스’를 제목으로 골랐을까? ‘인류’, ‘사람’, ‘인간’ 등등 다른 표현들이 있을텐데 말이다. 저자는 역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류’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숭고한 느낌이 준다. 시민혁명으로 시작된 ‘자유와 평등’ 사상이, 이미 지구의 지배자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지적 존재’의 이미지가, 신의 가호를 받아 (혹은 과학의 발전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승자’의 이미자가, ‘인류’라는 단어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10만년 전부터, 즉 여러 가치들이 발명되어 ‘인류’에 편입되기 한참 전부터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선 중립적인 용어가 필요하다. 침팬지나 오랑우탄과 유전적으로 유사하나, 두뇌 사용법과 직립보행에 좀 더 익숙한 영장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피엔스’. 인류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에 이만한 용어가 또 있을까.

   선사시대 인류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동물, 주변환경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종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릴라, 반딧불이, 해파리보다 딱히 더 두드러지지 않았다. 

   해파리보다 딱히 두드러질 것 없던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사피엔스의 역사를 7만년 전에 발생한 <인지혁명>, 1만 2000년 전의 <농업혁명>, 불과 500년 전에 시작한 <과학혁명>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 가운데 인지혁명은 사피엔스와 다른 종들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째서 우리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 논쟁은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인지혁멱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원래 먹이사슬에서 중간 이하에 자리잡은 종이었다고 한다. 사자같은 맹수들이 고기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들이 떠나면 특유의 손재주를 이용해 뼈에 남아있는 골수를 채취해 먹는 수준에 불과한 약한 종이었다. 그러다가 ’언어’가 발명된 이후엔 상황이 달라진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을 통해 사피엔스는 협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되었다. 사자를 피하고 들소를 사냥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하고, 각자의 역할을 정해 전투력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어의 추상화 기능 덕에 부족정신, 국가, 유한회사, 인권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즉, ‘신화’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신화들을 중심으로 사피엔스는 대단히 많은 숫자의 낯선 사람들끼리의 협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특정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저자는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 푸조를 신화의 전형적인 예로 들며, 신화의 특성을 소개한다.

   인간 아르망 푸조는 정확히 어떻게 회사 푸조를 창조했을까? 그 방식은 역사를 통틀어 사제와 마술사가 신과 악마를 창조해낸 방식과 매우 비슷했다. 오늘날 수천 명의 프랑스 신부들이 일요일마다 교구 성당에서 여전히 성체(예수의 몸)를 창조해내는 것과도 대단히 유사하다. 그 모두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활동들이다.

   푸조SA의 경우에는, 프랑스 의회가 제정한 프랑스 법조문이 핵심적인 이야기이다. 프랑스 의원들에 따르면, 자격 있는 변호사가 적절한 전례와 성찬식을 모두 따른 뒤 모든 필수 주문과 맹세를 멋지게 장식된 종이에 써 넣고 문서의 맨 아래에 멋지게 서명을 날인하면, 그러고서 야릇한 주문을 외우면 짠! 새로운 회사가 하나 탄생한다. 1896년에 아르망 푸조는 회사를 세우고 싶었기에 변호사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이 모든 성스러운 절차를 따르도록 했다. 일단 변호사가 올바른 의식을 모두 행하고 필요한 주문과 맹세를 마쳤다고 선언하면, 수백만 명의 강직한 프랑스 시민은 마치 ‘푸조’사가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신화는 거짓말과 달리 ‘가상의 실재’다.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기반한 인간의 행동은 없는 것을 마치 존재하고, 기능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다. 푸조나 삼성, LG같은 법인이 그러하고, 미국, 영국, 대한민국 같은 국가가 그러하다. 문화와 종교도 마찬가지다. 이런 신화는 비과학적 영역, 즉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을 통해 구체적으로 측정된 적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정은, ‘만물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가상의 실재’를 창조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최신 과학인 양자역학을 예로 들더라도, 확률 파동 함수라는 아주 독특한 성질을 갖는 가상의 실재를 통해서만 물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약 7만년전,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을 통해 언어라는 성장 엔진을 발명했다. 그 엔진은 사피엔스로 하여금, 아무리 난해한 개념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여태 본 적이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게 했고, 지금까지 이어진 인류의 역사를 발전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 엔진은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을 점령할 때, 인류가 호주 대륙을 발견하고 점령하는 순간, 그 후에 시작될 농업혁명, 과학혁명 모두 순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인지혁명 시기에 사피엔스는 도구, 불,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 힘을 통해 생태계의 지배자로 올라섰다. 사피엔스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연을 제어할 힘을 얻는다. 바로 농업혁명이다. 

   인간이 250만 년간 먹고 살기 위해 사냥했던 동물과 채집했던 식물은 스스로 자라고 번식한 것들이었다. 거기에 인간의 개입은 없었다. (…) 이들은 가는 곳마다 야생식물을 채취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면서 사는 방식을 유지했다. 현재의 방식으로 잘 먹고 살 수 있으며 풍성한 사회구조, 종교적 믿음, 정치적 역학의 세계를 잘 지탱할 수 있는데 굳이 왜 다른 것을 시도하겠는가?

   이 모든 상황은 대략 1만년 전 달라졌다. 이때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양을 끌고 갔다. 이런 작업을 하면 더 많은 과일과 곡물과 고기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 혁명이다.

   사피엔스는 밀,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 등의 작물을 경작했고, 가축을 길러 사냥을 하지 않아도 육류를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업 혁명 이후 단위 토지당 식량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그 덕분에 인구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의 삶이 더 나아졌다거나 행복해졌다고 보는 것은 큰 착각이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농업혁명은 오히려 덫에 가깝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무한히 공급되는 식량을 얻는 삶을 살다가, 농업혁명 이후로는 한정된 토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수많은 사람들이 나눠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여나 가뭄이 들거나, 식량의 분배 정책에 오류가 생기면 굶어죽기 십상이다. 예상과 달리,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2013년 기준, 세계 총인구 기준 12%가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농업 혁명의 수혜자는 사피엔스, 밀, 쌀, 소, 돼지 각 개체가 아닌 그들의 유전자들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언급된 자기 복제 본능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의 핵심은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농업혁명 이후,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렵-채집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중요하지 않다. 배가 고프면, 당장 사냥을 하거나 자연에서 과실을 따먹으면 된다. 마땅히 저장할 방법도 없으니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재밌게 놀면 된다. 하지만, 농부들은 미래를 걱정할 수 밖에 없다. 미래의 가뭄을 대비해 관개용 수로를 더 파야하고, 1년뒤 산출될 작물의 수율을 고려해 밭에 심을 씨앗의 양을 결정해야 한다. 겨울엔 작물을 재배할 수 없으니, 식품을 보관하는 방법도 개발해야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생산력이 증가하고, 잉여 식량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 잉여식량이 역사를 가속하기 시작했다. 

   잉여 식량의 발생으로 인해, 지배자-엘리트-정치-예술-철학-전쟁이 시작된다. 지배자는 잉여식량을 생산자들로부터 빼앗아 엘리트들에게 나눠준다. 그리고 불로소득과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 ‘상상속의 질서’를 개발해낸다. 그 상상속의 질서는 후에 종교나 국가관, 철학, 문화로 발전하게 된다. 극소수에 불과한 엘리트 층이 신화의 힘을 이용해 역사의 주인공으로 올라서는 순간이다. 

 

   고대의 사회학자는 신화에는 수백만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매일 협력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본능이 늘 그렇듯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동안,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 

   신화는 어디에서나 강한 힘을 발휘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인간을 두 개의 성, 세개의 계급으로 나누고 이에 엄격한 차등을 둔다. 그 근거는? 주신인 아누, 엔릴, 마르두크 신이 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이라고 다르지 않다.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는 창조주에게서 받은 것이기에 지켜야만 한다. 정말 아누, 엔릴, 마르두크, 창조주가 있어서, 예언자 한 명을 골라 법과 인권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설명해줬을까? 그 진위 여부는 역사의 해석에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상상속의 질서가 그 사회를 혼란과 붕괴로부터 지켜준다는 것이다. 신봉자들이 없는 신화는 허구와 거짓에 불과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약속, 도덕, 법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상상의 질서가 정확히 어떻게 삶이라는 직물 속에 짜 넣어졌는지를 설명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나 지면의 제약 때문에 우리는 겉핥기만으로 만족해야 하겠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 가지이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상상의 질서는 우리 마음 속에만 존재하지만, 우리 주변의 물질적인 실재 세계 속에 짜 넣어질 수 있다. 심지어 돌로 구현 될 수도 있다.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사람들을 대부분 자신들의 삶을 규율하는 질서가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 모든 사람은 기존의 상상의 질서 속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부터 지배적인 신화에 의해 욕망의 형태가 결정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 개인의 욕망은 상상의 질서의 가장 중요한 방어물이다.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설령 내가 초인적인 노력으로 스스로의 개인적 욕망을 상상의 질서의 속박에서 풀려나게 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나는 한 개인에 불과하다. 상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수백만 명의 낯설 사람에게 나와 협력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상상의 질서는 는 내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는 주관적 질서가 아니라 수억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상호 주관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가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먼저 믿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푸조를 해체하려면 프랑스 법률 체계처럼 그보다 더 강력한 뭔가를 상상해야 하고, 프랑스 법률 체계를 해체하려면 그보다 더 강력한 무엇, 예컨대 프랑스라는 국가를 상상해야한다. 국가마저 해체하려고 한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를 상상해야 할 것이다.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일 뿐이다.

   나는 앞에 인용한 두 문단이 이 책 <사피엔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피엔스의 역사는 자연의 속박으로 벗어나 상상속의 질서를 구축하는 부단한 노력이었다. 상상속의 질서는, 기원전 3500년경 어느 수메르인이 발명한 문자 시스템을 통해,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통해, 20세기 발명된 라디오/텔레비젼/인터넷을 통해 점점 더 강한 힘으로 사피엔스 사회를 규정해왔다. 인류의 역사는 실상, 상상속 질서의 역사인 셈이다. 상상속 질서가 물리적 세계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영향을 주기도 하는 서사가 바로 역사다. 

   <사피엔스>에는 대표적인 신화들을 분석한다. 돈, 종교, 제국, 정치, 인종차별, 남녀차별 등등. 그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돈 이야기를 옮겨보겠다.  

    

  이 정복자는 바로 돈이다. 같은 신을 믿거난 같은 왕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도 기꺼이 같은 돈을 사용하려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의 문화, 미국의 종교, 미국의 정치를 그토록 증오했지만 미국 달러는 매우 좋아했다. 돈은 어떻게 신과 왕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돈은 두 가지 보편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1. 보편적 전환성 : 돈이 있으면 당신은 마치 연금술사처럼 땅을 충성심으로, 사법을 건강으로, 폭력을 지식으로 변환할 수 있다.

  2. 보편적 신뢰 : 돈을 매개로 삼으면 임의의 두 사람은 어떤 프로젝트에도 협력할 수 있다. 

    돈은 정말 강력한 신화다. 돈이 있으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고, 병을 고칠 수도, 안락함과 아름다움을 살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서 돈의 힘을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때, 돈은 그나마 금이나 은이라는 물질을 담보로 하는 증서에 불과해서, 상상속의 그 무언가라고 하기보단 실제적 존재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돈은 완벽한 상상속의 질서로 편입된다. 미국의 경우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한국은 한국은행에서 “자, 여기 100억원이 생긴걸로 하겠습니다” 하면 돈이 생긴다. 응????? 그런데 허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업은행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그 돈으로 뻥튀기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은행은 실제로 갖고 있는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은행에서 100만원을 빌린 은행이, 고객인 김사장에게 돈 100만원을 대출해주었다. 김사장은 그 돈으로 직원인 박과장에게 월급을 100만원 준다. 착실한 박과장은 그 월급을 은행에 고스란히 저축한다. 은행이 빌려준 100만원은 다시 은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달. 김사장은 돈이 또 모잘라서 은행을 찾아가 100만원을 또 빌려서 김과장에게 월급을 준다. 현행 지급준비율이 7%니깐, 이걸 14번 할 수 있다. 이렇게, 은행은 100만원을 가지고, 박과장의 월급 1400만원을 창출해내는 마법을 부린다. 돈의 신화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갖 회사채, 국채, 주식, 국가별 화폐 등이 발행되고 있으며, 이것들이 국제 경제와 국가간의 권력을 제어한다. 지금의 자본의 시대라면, 지금을 신화의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약 500년 전부터 시작되고, 18세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영향력을 미친 <과학혁명>을 살펴보자. 인지 혁명 이후로, 사피엔스의 역사는 신화의 변천사였다. 하지만, 신화는 물질세계로부터 완전히 괴리된 것이 아니다. 앞에서 인용했듯이, ‘상상의 질서는 우리 마음 속에만 존재하지만, 우리 주변의 물질적 실재 세계에 짜 넣어질 수’ 있다. 이 문장의 대우 명제는 이렇다. 우리 주변의 물질적 세계에 짜넣어 질 수 없다면, 상상의 질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대우 명제가 참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과학을 통한 물질 세계에 대한 이해가 대표적 신화인 종교, 경제, 국가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근대 이전의 전통 지식이었던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단언했다. 위대한 신들, 혹은 전능한 유일신, 혹은 과거의 현자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가 있었고, 그것을 문자와 구전 전통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고대의 문헌과 전통을 파고들어 적절하게 이해함으로써 지식을 얻었다. 성경이나 코란, 베다에 우주의 핵심 비밀이 빠져 있다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피와 살을 가진 피조물들이 앞으로 발견할지도 모르는 비밀이 말이다. 

   

   과학은 두 가지 방향으로 상상속의 질서에 영향을 미쳤다. 우선, 과학적 사실/원리/법칙 기존의 신화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측정한 양들의 관계를 수학과 논리학을 이용해 일관되게 서술했고, 그것이 믿을만하고 유용했기 때문이다.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주장했다. 지식의 가치를 그 진리성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유용성으로 판단하자는 것이다. <신기관>이라는 과학선언문에 언급된 이 주장은, 당시 과학이 어떻게 종교를 비롯한 기타 진리관들을 앞질렀는지 보여준다.

   1744년,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목사인 웹스터와 월리스는 사망한 목사들의 가족을 위한 보험기금을 마련했다. 웹스터와 월리스는 매년 얼마나 많은 목사가 죽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미망인과 고아가 남을 것이며 미망인은 남편보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예측할 수 있어야 했다. 먼저 두 성직자가 하지 않은 일에 주목하자. 이들은 답을 알려달라고 하느님에게 기도하지 않았다. 성경이나 고대 신학자의 작품 속에서 답을 찾지도 않았다. 추상적인 철학 논쟁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 이들의 작업은 통계와 확률 분야에서 얼마전에 등장한 여러 발전들에 토대를 두었다. 그 중 하나가 야코프 베르누이의 ‘큰 수의 법칙’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과학적 발명품들은 역사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산업혁명의 상징인 와트의 증기기관은 기차, 선박, 공장의 건설로 이어졌다. 화학, 전기, 재료 기술의 발전은 총, 기관총, 대포, 탱크, 미사일, 전투기, 항공모함, 잠수함을 발명하게 하면서 세계대전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다.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무기인 핵무기는 1945년 8월, 일본에 떨어지며 무조건 항복을 얻어낸다. 생물학의 발전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방접종과 항생제의 발명은 인간의 수명을 대폭 늘려놓았다. 이 책에는 언급되진 않았지만, TIME지(04,July,2016)에 CRISPR 이라는 기술이 소개되었다. 아주 작은 로봇같은 것이 있어서, 생체 내의 고장났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DNA를 고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소설같은 이야기는 약 2012년 즈음, 최고 권위지 Nature와 Science에 나란히 실리며 생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어쩌면 영원한 생명을 추구한 고대의 영웅, 길가메시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지도 모르겠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과학은 강한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과학도 결국 인간의 여러 사고방식 가운데 하나인 만큼, 다른 신화들에 포섭될 수 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다. 

   과학이 제국주의를 지원한 가장 일차원적인 방법은 바로 무기였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인도/동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을 때, 총과 강력한 대포는 전투의 승리를 보장했다. 하지만,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는 이보다 더 긴밀한 것이다.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떠나는 군함에는 항상 다수의 과학자들이 탑승했고, 전투를 통한 식민지 개척과 그 식민지의 문화/역사/지리/기술에 대한 탐구는 항상 동시에 진행 되었다.

 무엇이 현대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19세기와 20세기에는 기술이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그대 초기에는 기술의 중요성에 한계가 있었다. 핵심요인은 식물을 찾는 식물학자와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데 있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둘 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둘 다 희망했다. 

   한편, 과학은 근대 후반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다. 자본주의 세계가 성장하기 위해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 즉 신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용의 창출을 위해선 더 나은 미래를 열어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때 과학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장이 포화되어 신용의 추가적 창출이 불가능해지면, 자본주의의 성장은 멈춰버린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실험실의 연구자들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책무를 떠안는다. 어쩌면, 21세기의 금융위기는 renewable energy, energy conversion, bioengineering 등등 과학기술이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발생한 일일 수도 있겠다. (사족: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 발전이 쉽게 되는게 아니란 걸, 정부와 은행이 좀 이해해주면 좋겠다)

 지난 몇 년간 은행과 정부는 미친 듯이 돈을 찍어냈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경제성장을 멈추게 할 지 모른다고 모든 사람이 겁에 질려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난데없이 조 단위의 달러와 유로와 엔을 만들어서 값싼 신용을 시스템에 펌프질 해 넣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의 거품이 터지기 전에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가 어찌해서든 뭔가 정말 큰 건수를 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실험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생명공학 기술이나 나노기술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새로운 발견은 온전히 새로운 산업 영역을 창조해낼 수 있으며, 그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은행과 정부가 2008년부터 만들어낸 조 단위의 환상의 돈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거품이 터지기 전에 연구실들이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미래는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돌도끼로 멧돼지를 때려 잡아먹고, 나무에서 과실을 따먹던 사피엔스는 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을 거쳐 현재에 도달해 있다. 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있다. 인류는 두 번의 잔인한 전쟁을 치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거쳐 일시적인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평화 뒤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누적 되어간다. 최근의 경제 위기는 각 나라의 정치상황을 뒤바꿔 놓았다.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언행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종교/인종/민족/성별/심지어 경제적 지위를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기술적인 면을 보면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 CRISPR로 가능해진 유전자 조작 기술/ 두뇌과학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의식의 이해/ 지속적인 삶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기술 등이 눈에 띈다. 21세기를 지배하는 두 세계인, “상상속의 질서”와 “물질 세계”는 앞으로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역사를 만들어가게 될까. 

   아마 이 책 <사피엔스>가 재미있게 읽힌 이유는, 복잡한 세계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 10만년간의역사를 책 한권에 담으려고 애쓴 저자의 용기와 끈기, 인류의 역사와 “상상속의 세계와 물질 세계의 교류”라는 법칙을 독자에게 소개해준 자상함에 감사하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순식간에 엄청난 지혜가 생겨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예측할 수 있게 된 것 아니다. 다만, 앞으로 발생할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할 수 있는 도구를 얻은 기분이 든다.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야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그나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로..  <사피엔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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