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김정운.

유학 생활을 하다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혼자 일하고 홀로 쉬는 시간이 많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생활을 홀연히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는 했지만, ‘혼자’로부터 떠난 시간이 꽤 흘러버린터라 이 조용함은 쉬이 익숙해지기가 않는다. 고독. 외로움. 혼자 있음. 홀로 존재함. 이것들과 친해져보려고 애를 쓰던 어느날,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찾았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저자인 김정운 씨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약간은 고마운 문장이었다. 제목을 읽고’아, 나는 사실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건가’ 하는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외로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그리고 현실로 와닿는 감각은 쓰라림이다. 외로움은 홀로있음, 바꿔말하면 누군가가 나를 떠났거나, 나를 찾지 않는 것을 말한다. 소통과 공감을 누리지 못하고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프고 힘든 일이다. 감옥에서도 아주 큰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나, 일정 기간 징계를 줄 경우에나 사람을 독방에 가둔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반대로 말한다. 외로워야 한다.

그는 안정적인 대학교수 자리를 걷어차고 어느날 뜬금없이 일본으로 떠나 미술을 공부한다. 이 일은 <그리스인 조르바>을 다시 읽은 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거지!”  (p.333)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은 외로움을 수반하고, 이를 사유하게 한다. 싱크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아 울다가 고독사를 걱정하던 이야기, ‘고독 순응 사회’인 일본 이야기를 시작으로 외로움에 대한 문화심리학적 분석을 시작한다. 

데카르트가 ‘나’라는 주어를 써서 주체의 존재 방식을 ‘사유’로 규정했을 때를 ‘근대적 개인의 탄생’으로 볼 수 있다. 이 데카르트적 자아는 고립을 전제로 한다. 세계와 타자로부터, 독립된 자아의 확인으로부터 주체가 성립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적 명제를 심리학적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나는 고독하다. 그러므로 존재한다.(p.24) 

수백년에 걸친 서구의 근대화를 불과 수십 년 만에 해치운 압축성장괴정에서 우리는 고독할 틈도 없었다. 고독은 사치였다. 그러나 평균 수명 100세를 사는 우리에게 고독은 존재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고독 저항 사회’에서 고립된 삶은 ‘호환 마마’보다도 무섭다. 고독에 대처하는 어떠한 문법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 고독한 개인의 구원은 역설적으로 개인의 내면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가능하다. 고독할수록 더 고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건 예술적 몰입일수도 있고, 종교적 명상일 수도 있다. 아, ‘팔굽혀펴기’일 수도 있다. (p.25)

외로움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저자는 몇 가지 조언을 한다. 홀로 있는 시간을 만들고, 구체적 활동을 통해 내면에 집중할 것.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에 의하면 인간은 구체적 삶이라는 무대 위에 여러 자아를 연기하는 존재다. 한 인격이 여러 자아를 끊임없이 제대로 연기해내기 위해선 무대 뒤의 공간인 ‘배후 공간’이 필요하다. ‘배후공간’은 타인에게 감시되지 않는 내밀한 곳에서 조용히 명상하고, 자기를 성찰함으로서 가꿔진다. 그 방법은 구체적일 수록 좋다. <행복의 기원>(서은국 지음)에는 행복에 대한 명료한 결론이 담겨있다. 

행복감이란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한 수단일 따름이며, 행복은 아주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진화심리학적 설명이 자주 맘에 안들었지만 그 과감한 주장은 모처럼 감동적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행복이란 한마디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거 먹는 데 있다’는 거다. (…) 난무하는 자기계발서의 추상적 언어로 아무리 자기최면을 걸어도, 자신의 구체적 생활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뿐만이 아니다. 삶을 지탱하는 모든 가치와 이념이 그렇다. 추상적 언어가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구체적 어휘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할지라도, 내 삶에서 구체화될 수 없다면 그건 순 가짜다.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p.114)

그 구제적 실천의 예로, 산책도 언급된다.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가 그러했듯,  항상 철학적 사유, 내면의 성찰과 연결된다. 걷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대조 되는데, 하나는 미지의 산 속에서 헤메며 돌아다니는 것을 일컫는 독일의 ‘방랑(wandern)’, 다른 하나는 발터 벤야민이 제안한 ‘산책(fla^ner)’이다. 벤야민은 도시를 구석구석 걷는 것을 추천하는데, 이 과정에서 산책자는 군중의 일원이면서도, 이를 반성적 거리에 두고 메타적 관찰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주인공이자 관객, 배우이자 스탭. 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가지는 것이 지속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하다.

책에는 이 외에도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이 담겨있다. 여행을 자주 하고 부지런히 보러 다닐 것, 많은 것과 많은 이를 흉내내도록 노력할 것, 시기심과 이분법을 조심할 것, 미숙함으로부터 의미와 가치를 찾을 것,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자유인으로 행동할 것. 매 챕터, 문단마다 굳이 언급되어있지는 않지만, 이 모든 것들은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만, 이 것들은 혼자 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훌륭한 삶, 행복한 삶의 전제는 ‘나’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홀로 바깥 세상을 직시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는 것이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은 저자의 일본 유학 생활, 공부중인 그림에 대한 생각, 외로움의 가치와 의미, 행복을 위해 필요한 사유 방식 등에 대한 글을 모아둔 에세이집이다. 책 제목에 너무 몰두해 버려서, 책 전체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며 읽었던 점이 아쉬웠다. 아마, 시간을 두었다가 다시 읽어보면 새로운 글로 읽힐 것 같다. 저자의 다양한 삶처럼, 이 한 권의 책엔 꽤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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