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서명: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저자: 하야마 아마리

옮긴이: 장은주

출판사: 예담

읽은이: 마시마로

 

인상적인 제목이 눈길을 끌어 손이 가게 된 책이다.

생일에 죽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책의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일본의 한 아마추어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옮긴 것이다. 아래에서 설명할 ’아마리’라는 가명을 쓰는 저자는 이 소설을 ’제1회 일본 감동대상’에 투고하여 대상을 수상하였다.

 

글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29살의 생일을 맞이하게 된 한 여자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비정규직으로 분류할 수 있는 파견 사원으로 일하고 있고, 체중은 70kg에 매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외모를 갖고 있다. 모아둔 돈은 거의 없으며, 이렇다 할 연인도 친구도 없는 개성없는 삶을 살고 있다. 3평짜리 원룸에서 자신의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사온 조각 케이크 위에 한 개의 촛불을 밝힌 그녀는 자신에게 들려줄 노래를 부른다.

 

Happy birthday to me.

 

마땅히 하고 싶은 것도 재미있는 것도 없이, 마냥 착하게만 살아온 그녀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없는 초라한 신세에 불과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상실감에 자살을 결심하지만 이마저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때, 어두운 방을 환히 밝히는 TV의 한 장면. 라스베가스. 그 곳의 화려함에 큰 충격을 받아, “기왕 죽을 거”란 마음 가짐으로 그녀는 1년간 돈을 모아 라스베가스에서 화끈하게 돈을 써버린 후 죽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맹목적이지만 매우 간단명료한 목표를 갖게 된 그녀는 1년간 200만엔을 모으기로 결심하고 성실히 과정을 수행해 나간다.

 

돈을 모아야 했기에 밤에는 긴자에서 호스티스 일을 해야했다. 마담이 가명을 무엇으로 할 지 묻는 물음에 그녀는 ’아마리’(우리말로 나머지라는 뜻)라고 대답한다. 작가의 가명과 동일하다. 그렇게 그녀는 죽음을 1년 유보한 채, 스스로에게 부여한 ’나머지’ 인생을 시작한다.

 

아마리는 일을 통해, 몇몇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 전에는 생각치 못했던 교훈들을 쌓아간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아마 ’하고 싶은게 없다’는 죄일 것이다.’

‘세상은 널 돌봐줄 의무가 없다. 그리고 너에겐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자.’

‘외톨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인 것이다.’

‘절박함, 인생의 막판에 이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힘이 솟는 거구나’

‘모두가 스스로 정해 버린 시한부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뭐든 그렇겠지만 일류니 고급이니 하는 말은 늘 조심해야 해. 본질을 궤뚫기가 어려워 지거든.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잣대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 세상은 온통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만의 눈과 잣대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그게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

‘닥치는 대로 부딪쳐 봐. 무서워서, 안 해본 일이라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일일수록 내가 찾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이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그래서 오늘 이 만찬을 계기로 다시 나의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

 

결국 그녀는 생을 마치기로 한 라스베이거스에서, 스스로 살아낼 수 있는 힘과 의미를 찾은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삶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렇다 할 수단 없이 세상에 나가서는 생존하기 힘들다. 얼마 전SBS에서 방영된 ’최후의 제국’에서 일러주듯, 자본주의의 부작용은 시간이 갈 수록 더 냉혹해져 간다. 아마리가 겪었던 좌절감과 동일한 느낌을 지닌 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수는 더 늘어만 간다. 젊은이들의 무기력함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기성세대와의 대화에서는 벽이 느껴진다. ‘내가 뭘 잘 못 했을까. 사회가 부여한 온갖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는가’하는 억울한 감정이 지배적이다. 이런 경제적/구조적 문제 뿐 아니라, 아픈 실연을 당했거나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입었거나 하는 등의 개인적 문제도 종종 삶의 의미를 잃게 할 만큼의 좌절감을 준다.

 

아마리는 이런 문제를 겪는 이들에게 희망 담긴 메세지를 건넨다.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굳은 자신감과 자기애를 가질 것.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용기를 갖고 도전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낼 것.

 

이것들은 흔한 자기 개발서에서 말하는 ’성공’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나는 아마리의 교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스스로 서있는 자신과 만나는 방법’이라고 요약해 보고 싶다. 작가가 겪은 일련의 경험들은 사실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다.호스티스/누드모델/하루 20시간에 가까운 노동/라스베가스에 전 재산을 들고 가서 도박하기.. 하지만, 그녀의 도전에서 감동을 받게 되는 이유는 매 시도가 성공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하나씩 얻어가는 삶의 의미와 교훈들을 통해 그녀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감동을 일으킨다. 아마 이런 이유로 ’일본 감동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해 본다.

 

 

덧1. 아픔을 다루는 소설인 만큼 서평을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저자가 겪은 아픔의 크기를 주관적인 입장에서 해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세지를 내가 제대로 이해했을지 의문이 든다. 이래서 소설은 어렵다…

 

덧2.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아픔은 얼마나 많으며, 그 가운데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나는 성공했는데, 너네는 왜 못하냐’라는 식의 비아냥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저자는 결국 성공한 삶을 이뤄내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성취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덧3.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요 몇 년간 꼭 생일 전후해서 안 좋은 일들이 겹치는 바람에 아마리에게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아 맞어, 나도 생일 때 그랬는데’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이 꽤 많았다. 공명이 지나치면 흥분이 되는 것일까. 주변의 몇몇 친구들에게 이 책을 사주고 있다.